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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영랑 시인 / 모란이 피기까지는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6.

김영랑 시인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1934년 〈문학〉 4월호에 발표되었고, 1935년 시문학사에서 펴낸 〈영랑시집〉에 제목 없이 45번이란 숫자로 실려 있다. 모란으로 상징되는 봄에 대한 기다림과 봄을 잃어버릴 허탈감을 노래한 시로, 전통적 리듬과 사투리가 잘 어울려 세련된 언어감각을 보여준다.

 

 


 

 

김영랑 시인 / 四行詩

 

 

1

임 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쉬면 꺼질 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같이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

 

2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

 

3

좁은 길가에 무덤이 하나

이슬에 젖이우며 밤을 새인다

나는 사라져 저 별이 되오리

뫼 아래 누워서 희미한 별을

 

4

저녁 때 저녁 때 외로운 마음

붙잡지 못하여 걸어다님을

누구라 불러 주신 바람이기로

눈물을 눈물을 빼앗아 가오

 

5

무너진 성터에 바람이 세나니

가을은 쓸쓸한만 뿐이구려

희끗희끗 산국화 나부끼면서

가을은 애닯다 속삭이느뇨

 

6

뵈지도 않는 입김의 가는 실마리

새파란 하늘 끝에 오름과 같이

대숲의 마음 기여 찾으려

삶은 오로지 바늘 끝까지

 

7

푸른 향물 흘러버린 언덕 위에

내 마음 하루살이 나래로다

보실보실 가을눈(眼) 이 그 나래를 치며

허공의 속삭임을 들으라 한다.

 

8

허리띠 매는 시악시 마음실 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 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

 

 


 

 

김영랑 시인 / 5월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 이랑 만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김영랑 시인 / 5월 아침

 

 

비 개인 5월(五月)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지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香薰)이 어찌

이 맘 홍근 안 젖었으리오만은

 

이 아침 새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 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蒼空)을 흔드오

자랑찬 새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麝香) 냄새도 잊어 버렸대서야

불혹(不惑)이 자랑이 아니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魂)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익(靜謚)하단들 또 무얼하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少年)인가 보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中年)이고

내사 불혹(不惑)을 자랑튼 사람


영랑시선, 정음사, 1949

 

 


 

 

김영랑 시인 / 가늘한 내음

 

 

내 가슴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해 고요히 지는 제

머언 산 허리에 슬리는 보라빛

 

오! 그 수심뜬 보라빛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한이틀 정열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얼결에 여윈 봄 흐르는 마음

헛되이 찾으려 허덕이는 날

뻘 위에 처얼썩 갯물이 놓이듯

얼컥 이ㅡ는 후끈한 마음

 

아니 후끈한 내음 내키다 마아는

서언한 가슴에 그늘이 도오나니

수심 띠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산허리에 슬리는 저녁 보라빛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본명은 김윤식(允植). 영랑(永郞)은 아호.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청산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광복 후 오랫 동안의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9.28 수복 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김영랑은 1930년 3월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이하윤(異河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 회의 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도 비애의식(悲哀意識)은 영탄이나 감상(感傷)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 정감의 시세계를 이룩하고 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 <독을 차고>, <망각>, <묘비명> 등 일련의 시작품에서는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죽음의식은 초기시에서와 같이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민족관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해방 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 <천리(千里)를 올라온다> 등은 일제 치하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과 자선시집 <영랑시선>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