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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목월 시인 / 산이 날 에워싸고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6.

박목월 시인 /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 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 시인 / 우회로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이 깔렸다.

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확대되어 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우회로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가아제로 닦고

응결하는 피.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혼수 속에서 피어 올리는

아내의 미소(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긴 우회로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나선 통로를

내가 내려간다.

 

 


 

 

박목월 시인 / 윤사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운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朴木月, 1915.1.6~1978.3.24] 시인

본명은 영종(泳鍾). 1916년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출생하여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자람.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 졸업. 정지용(鄭芝溶)에 의해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과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그밖의 저서로는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음.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및 1963년 교수,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역임.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 1978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