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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창만 시인 / 닭이 운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9.

심창만 시인 / 닭이 운다

 

 

  새벽은 등으로 터진다

  날갯죽지에 고개를 처박은

  간절한 능선,

  등은 목보다 길다

  새벽달이 올라앉은

  서늘한 횃대

 

  누가, 나를

  양푼처럼 끌어안고

  쌀을 안친다

  오래오래 밥이 될

  깜깜한 능선

  목젖도 아궁이도 많이 부었다

 

  십 리 밖까지 등이 휘도록

  싸락눈 털어내며

  닭이 운다

 

시집 『무인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 2012) 중에서

 

 


 

 

심창만 시인 / 무인 등대에서 휘파람

 

 

  아라비아 귀신처럼 우두커니 서서

  나는 아무 주문도 외지 못한다

  슬하에 바다를 두었던 한 시대가 낯설다

  물고기 이름처럼 사소한 바다

 

  시절이 있다는 것이 끔찍하다

  시간의 거친 창이

  불 꺼진 내 눈알을 길게 찔러놓았다

  수평선은 내게 긴 목을 주었으나

  늘어진 거미줄이 숨을 조여와

  내 두개골은 폐허의 진앙지처럼 텅 비었다

 

  달빛은 동맥을 뿌옇게 풀어놓고

  도대체, 해당화는

  10년 전의 피를 갖고도 꽃인 것이다

  나는 무섭다

  우두커니 서서 나는 나의 무덤도 아니다

  10년 전에 내가 젊었었다니

  사막 같은 바다에

  내가 나의 표지(標識)였다니

 

  달빛도 바람도 길을 잃는

  퀭한 두개골,

  무변(無邊)의 파도가 넘실대는

  이 적요의 중심.

 

시집 『무인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 2012) 중에서

 

 


 

심창만 시인

전북 임실에서 출생. 1988년 《시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1997년 계간 《문학동네로》 본격적인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무인등대에서 휘파람』(푸른사상, 201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