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안차애 시인 / 총량 불변의 법칙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9.

안차애 시인 / 총량 불변의 법칙

 

 

감자 꽃이 피는 철에는 감자 순을 꺾어주어야 수확이 좋다. 꽃이 요요하고 성성해지는 시간, 새 순 내고 새 꽃망울 터뜨리느라 흙 속 감자 알 덜 여무는 것이다. 제일 말랑하고 어여쁜 꽃 순부터 꺾어낸다. 차마 바로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손 내밀어 여릿하고 달콤한 새 관계의 순을 툭 툭 잘라낸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언젠가 한 짓이었다.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너의 곁순을 몰래 꺾어냈다. 사랑이라는 당위로 네가 나의 속순 몇 개를 살짝 잘라냈다. 우주적인 그리움의 엔탈피를 맞추기 위해 우리의 가장 중심 순 하나가 꺾이어졌다. 꺾어낸 가지 끝에선 벌써 너 댓개의 새 순이 비명처럼 솟아올라 그리움의 총량은 맞추어 지고 있다.

 

계간 『문학과 창작』 2012년 봄호 발표

 

 


 

 

안차애 시인 / 나는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론의 시작은 물속에서다.

  연어가 찾아가는 것도 결국 태초의 양수 냄새다

  우울할 때 몸이 무겁거나 미열이 오를 때........

  사우나탕에라도 가서 물방울 안마기 속에 몸을 묻는다.

  둥글었던 것들의 회귀본능이다

 

  물방울들은 알처럼 뽀글거리며

  내내 무거웠던 관절들을 뚝뚝 떼어낸다.

  하방 경직성의 생각들도 가볍게 툭툭 던져 버린다.

  제대로 상한 오장육부를 꽈리처럼 까르륵 부풀려 마사지다.

 

  연골이나 세포사이가 새살 올라오듯 간지럽다

  신생대 중생대 아득히 역류하여

  비로소 마찰 없는 유선형의 선캄브리아기로의 회귀다

  내가 자궁 속의 알이었을 때의 빙글거리던 느낌?

  내 자궁에 작은 알을 품고 있을 때의 울렁거리는 느낌?

 

  알이었던 나와 알을 품었던 나 사이의 한 세상이

  내 진화의 전모다.

  나의 아프락사스다

 

계간 『시인시각』 2011년 봄호 발표

 

 


 

안차애 시인

1960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교육대학 졸업.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불꽃나무 한 그루』(문학아카데미, 2003)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