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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영랑 시인 / 북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0.

김영랑 시인 / 북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는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영랑시선, 정음사, 1949

 

 


 

 

김영랑 시인 / 언덕에 바로 누워

 

 

언덕에 바로 누워

아슬한 푸른 하늘 뜻없이 바래다가

나는 잊었읍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 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 몸이 서러운 줄 언덕이야 아시련만

마음의 가는 웃음 한 때라도 없드라냐

아슬한 하늘 아래 귀여운 맘 질기운 맘

내 눈은 감기었네 감기었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淸明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가을 아침

취어진 청명을 마시며 거닐면

수풀이 호르르 벌레가 호르르르

청명은 내 머리속 가슴 속을 젖어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여 나가나니

 

온 살결 터럭끝은 모두 눈이요 입이라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 아침 청명의

가장 곱지 못한 노래꾼이 된다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

밤 새여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벽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지면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쓰고

그 때에 토록하고 동백 한 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살의 흐름이 저리했다

 

왼 소리의 앞소리요

왼 빛깔의 비롯이라

이 청명에 포근 취해진 내마음

감각의 시원한 골에 돋은 한낱 풀잎이라

평생을 이슬 밑에 자리잡은 한낱 버러지로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풀 위에 맺혀지는

 

 

풀 위에 맺혀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본명은 김윤식(允植). 영랑(永郞)은 아호.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청산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광복 후 오랫 동안의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9.28 수복 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김영랑은 1930년 3월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이하윤(異河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 회의 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도 비애의식(悲哀意識)은 영탄이나 감상(感傷)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 정감의 시세계를 이룩하고 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 <독을 차고>, <망각>, <묘비명> 등 일련의 시작품에서는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죽음의식은 초기시에서와 같이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민족관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해방 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 <천리(千里)를 올라온다> 등은 일제 치하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과 자선시집 <영랑시선>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