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시인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두견(杜鵑)
울어 피를 토하고 뱉은 피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으로 지친 작은새 너는 넓은 세상에 설음을 피로 새기려 오고 네 눈물은 수천 세월을 끊임 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쪽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젖한 이 새벽을, 송구한 네 울음 천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고 하늘가 어린 별들 바르르 떨리겠구나...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릴것을... 아니 울고는 차마 죽어 없으리오 불행의 넋이여! 우지진 진달래 와지직 이 삼경의 네 울음.
김영랑 시인 / 두견(杜鵑)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千)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붐 옥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라듸야 옛날 왕궁(王宮)을 나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 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 소리 쇤 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띄웠을 제 네 한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 없으리, 오! 불행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山)이 살풋 물러서고 조그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물소리
바람따라 가지오고 멀어지는 물소리 아주 바람같이 쉬는 적도 있었으면 흐름도 가득 찰랑 흐르다가 더러는 그림같이 머물렀다 흘러보지 밤도 산골 쓸쓸하이 이 한밤 쉬어가지 어느 뉘 꿈에 든 셈 소리 없든 새벽 잠결에 언뜻 들리어 내 무건 머리 선뜻 씻기우느니 황금소반에 구슬이 굴렀다 오 그립고 향미론 소리야 물아 거기 좀 멈췄으라 나는 그윽히 저 창공의 銀河萬年을 헤아려보노니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시인 / 수풀 아래 작은 샘
수풀 아래 작은 샘 언제나 흰구름 떠가는 높은 하늘만 내어다보는 수풀 속의 작은 샘 넓은 하늘의 수만 별을 그대로 총총 가슴에 박은 작은 샘 두레박을 쏟아져 동이 가를 깨지는 찬란한 떼별의 흩는 소리 얼켜져 잠긴 구름 손결이 온 별나라 휘흔들어버리어도 맑은 샘 해도 저물녁 그대 종종걸음 훤듯 다녀갈 뿐 샘은 외로워도 그밤 또 그대 날과 샘과 셋이 도른도른 무슨 그리 향그런 이야기 날을 세웠나 샘은 애끈한 젊은 꿈 이제도 그저 지녔으리 이밤 내 혼자 나려가볼꺼나 나려가볼꺼나
영랑시선, 정음사, 1949
김영랑 시인 / 사랑은 하늘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맹세는 가볍기 흰구름쪽 그 구름 사라진다 서럽지는 않으나 그 하늘 큰 조화 못 믿지는 않으나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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