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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영랑 시인 / 하날갓 다은데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1.

김영랑 시인 / 하날갓 다은데

 

 

내옛날 온꿈이 모조리 실리어간

하날갓 닷는데 깃븜이 사신가

 

고요히 사라지는 구름을 바래자

헛되나 마음가는 그곳 뿐이라

 

눈물을 삼키며 깃븜을 찻노란다

허공을 저리도 한업시 푸르름을

 

업듸여 눈물로 따우에 색이자

하날갓 닷는데 깃븜이 사신가

 

 


 

 

김영랑 시인 / 강 물

 

 

잠 자리 서뤄서 일어났소

꿈이 고웁지 못해 눈을 떳소

 

벼개에 차단히 눈물은 젖었는듸

흐르다못해 한방울 애끈히 고이었소

 

꿈에 본 강물이 몹시 보고 싶었소

무럭무럭 김 오르며 내리는 강물

 

언덕을 혼자서 지니노라니

물오리 갈매기도 끼륵끼륵

 

강물은 철 철 흘러가면서

아심찬이 그꿈도 떠실고 갔소

 

꿈이 아닌 생시 가진 설움도

작고 강물은 떠실고 갔소.


여성, 1940. 4

 

 


 

 

김영랑 시인 / 지반추억(地畔追億)

 

 

깊은 겨울 햇빛이 따사한 날

큰 못가의 하마 잊었던 두던길을 사뿐

거닐어가다 무심코 주저앉다

구을다 남어 한 곳에 쏘복히 쌓인 낙엽

그 위에 주저앉다

살르 빠시식 어쩌면 내가 이리 짖궂은고

내 몸 푸를 내가 느끼거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어지다?

못물은 치위에도 달른다 얼지도 않는 날세

낙엽이 수없이 묻힌 검은 뻘 흙이랑 더러

들어나는 물부피도 많이 줄었다

흐르질 않더라도 가는 물결이 금 지거늘

이 못물 왜 이럴고 이게 바로 그 죽음의 물일가

그저 고요하다 뻘흙속엔 지렁이 하나도

꿈틀거리지않어? 뽀글하지도 않어 그저

고요하다 그 물 위에 떨어지는 마른 잎

하나도 없어?

햇빛이 따사롭기야 나는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꼈는데.

여나문해? 그때는 봄날이러라 바로 이 못가이러라

그이와 단 둘이 흰 모시 진설 두르고 푸르른

이끼도 행여 밟을세라 돌 위에 앉고

부풀은 봄물결 위에 떠노는 백조를 희롱하여

아즉 청춘을 서로 좋아하였었거니

아! 나는 이지음 서어하나마 인생을

느끼는데.


민족문화, 1947. 12

 

 


 

 

김영랑 시인 / 발 짓

 

 

건아한 낮의 소란소리 풍겼는듸 금시 퇴락하는 양

묵은 벽지의 내음 그윽하고

저쯤에사 걸려 있을 희멀끔한 달

한자락 펴진 구름도 못 말어놓은 바람이어니

포근히 옮겨 딛는 밤의 검은 발짓만 고되인

넋을 짓밟누나

아! 몇날을 더 몇날을

뛰어본다리 날아본다리

허잔한 풍경을 안고 고요히 선다.

 

 


 

 

김영랑 시인 / 춘향(春香)



큰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는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단심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설움이 사모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 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하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 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깊은 겨울밤 비바람은 우루루루

피칠 해 논 옥창살을 들이치는데

옥(獄)죽음한 원귀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 춘향도 혼을 잃고 몸을 버려 버렸다

밤새도록 까무러치고

해 돋을녘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


믿고 바라고 눈 아프게 보고 싶던 도련님이

죽기 전에 와 주셨다 춘향은 살았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 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잔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 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틀림없는 도련님 춘향은 원망도 안 했니라

오! 일편단심


모진 춘향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온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 법

출도(出道)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卞哥)보다 잔인 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

영랑시선, 정음사, 1949


 


 

본명은 김윤식(允植). 영랑(永郞)은 아호.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청산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 향리에 머물렀다. 광복 후 오랫 동안의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9.28 수복 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김영랑은 1930년 3월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이하윤(異河潤) 등과 창간한 동인지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 회의 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도 비애의식(悲哀意識)은 영탄이나 감상(感傷)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 정감의 시세계를 이룩하고 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거문고>, <독을 차고>, <망각>, <묘비명> 등 일련의 시작품에서는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죽음의식은 초기시에서와 같이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민족관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해방 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 <천리(千里)를 올라온다> 등은 일제 치하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영랑시집>과 자선시집 <영랑시선>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