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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석본 시인 / 떠돌이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3.

구석본 시인 / 떠돌이별

 

 

  혼자였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도시에서 오직 혼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빛나는 것들은 유리벽 밖에서 몸짓만 보내며

  그들의 자리에서 번쩍이는 어둠으로 남아

  이 도시의 풍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밖에서 빛나던 것들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도시의 한가운데로 침몰합니다

  침몰하는 그들을 향하여 소리 지르면

  그리움의 근원이 무너지고

  하늘에서 절망적인 외로움이

  우루루 우루루 내려와

  엘리베이터의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려

  캄캄한 하늘로 올라가는 나는,

  이 도시의 이름 없는

  떠돌이별이 되었습니다.

 

 


 

 

구석본 시인 / 반딧불

 

 

  한 세상이 저물고 나면

  이승의 한쪽에서 푸르게 깔린 어둠이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아득히 깊어가고 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던 식물의 질긴 신음소리도

  산천의 어둠 속으로 깊어갈 때

  반딧불 하나가 풀숲에서 날아오른다

  문득, 원근의 어둠이 슬슬 풀리기 시작하더니만

  일제히 반딧불을 향하여 몰려간다

  만물의 어둠이 사냥개처럼 짖으며

  반딧불을 향하여 몰려간다

  오, 누군가 밝혀둔 이승의 정신 하나가

  어둠에 쫓겨

  세상의 바깥으로 바깥으로 날아간다

  마침내 반딧불은 세상의 바깥으로 사라지고

  쫓아가던 어둠만 남아

  사냥개처럼 컹컹 짖는 어둠만 남아

  이승의 한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집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시와반시, 1998) 중에서

 

 


 

구석본 시인

경북 칠곡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지상의 그리운 섬』,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 등과 산문집 『시여, 다시 그리움으로』,  『언어의 안과 밖』이 있음. 1985년 대한민국문학상, 대구문학상, 대구광역시문화상(문학부문) 등 수상. 『시와반시』 주간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