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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호우 시인 / 낙엽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7.

이호우 시인 / 낙엽(落葉) 1

 

 

임 가신 저문 뜰에 우수수 듣는 낙엽(落葉)

잎잎이 한(恨)을 얽어 이밤 한결 차거우니

쫓기듯 떠난 이들의 엷은 옷이 맘 죄네.

 

피기는 더디하고 지기는 쉬운 이 뜰

이 몸이 스ㅣ어지면 봄바람이 되어설랑

서럽고 가난한 이를 먼저 찾아가리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산길에서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이호우 시인 / 초원(草原)

 

 

상긋 풀 내음새

이슬에 젖은 초원.

 

종달새 노래 위로

흰구름 지나가고,

 

그 위엔 푸른 하늘이

높이 높이 열렸다.

 

 


 

 

이호우 시인 / 모강(暮江)

 

낙조 타는 강을

배 한 척

흘러가고

 

먼 마을

저녁 연기

대숲에 어렸는데

 

푸른 산

떨어진 머리

백로 외로 서 있다.

 

 


 

 

이호우 시인 / 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이호우 시인 / 개화(開花)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이호우 시인

시조시인. 아호는 이호우(爾豪愚). 경상북도 청도(淸道) 출생.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고, 29년에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의 재발과 위장병으로 귀국하였다. 시작활동은 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고, 40년 《문장》에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으로 <달밤>이 실리면서 본격화되었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도 참여하였다. 55년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그 후의 작품들을 모아 68년 《휴화산(休火山)》을 발간하였다. <달밤>에서와 같이 범상한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초기 작품의 특징이라면 《휴화산》에서는 인간 욕망의 승화와 안주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 1 회 경북문화상을 받았고 72년 대구(大邱) 남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55년 첫시조집으로 제 1 회 경복문화상을 받았고, 편저로 《고금시조정해(古今時調精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