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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상용 시인 / 남으로 창을 내겠소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12.

김상용 시인 / 남으로 창을 내겠소

 

 

(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포구(浦口)

 

 

슬픔이 영원(永遠)해

사주(砂洲)의 물결은 깨어지고

묘막(杳漠)한 하늘 아래

고(告)할 곳 없는 여정(旅情)이 고달퍼라.

 

눈을 감으니

시각(視覺)이 끊이는 곳에

추억이 더욱 가엾고

 

깜박이는 두 셋 등잔 아래엔

무슨 단란(團欒)의 실마리가 풀리는지......

 

별이 없어 더 서러운

포구(浦口)의 밤이 샌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반딧불

 

 

너는 정밀(靜謐)의 등촉(燈燭)

신부(新婦)없는 동방(洞房)에 잠그리라.

 

부러워하는 이도 없을 너를

상징(象徵)해 왜 내 맘을 빚었던지

 

헛고대의 밤이 가면

설운 새 아침

가만히 네 불꽃은 꺼진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나

 

 

나를 반겨함인가 하여

꽃송이에 입을 맞추면

전율(戰慄)할 만치 그 촉감(觸感)은 싸늘해-

 

품에 있는 그대로

이해(理解) 저편에 있기로

'나'를 찾았을까?

 

그러나 기억(記憶)과 망각(忘却)의 거리

명멸(明滅)하는 수(數)없는 `나'의

어느 '나'가 '나'뇨.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물고기 하나

 

 

웅덩이에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

그는 호젓한 내 심사(心思)에 걸렸다.

 

돍새 너겁 밑을 갸웃거린들

지난 밤 져버린 달빛이

허무(虛無)로히 여직 비칠리야 있겠니?

지금 너는 또 다른 웅덩이로 길을 떠나노니

나그네 될 운명(運命)이

영원(永遠) 끝날 수 없는 까닭이냐.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태풍(颱風)

 

 

죽음의 밤을 어질르고

(門)을 두드려 너는 나를 깨웠다.

 

어지러운 명마(兵馬)의 구치(驅馳)

창검(槍劍)의 맞부딪힘,

폭발(爆發), 돌격(突擊)!

아아 저 포효(泡哮)와 섬광(閃光)!

 

교란(攪亂)과 혼돈(混沌)의 주재(主宰)여

꺾이고 부서지고,

날리고 몰려와

안일(安逸)을 항락(享樂)하는 질서(秩序)는 깨진다.

 

새싹 자라날 터를 앗어

보수(保守)와 조애(阻碍)의 추명(醜名) 자취(自取)하든

어느 뫼의 썩은 등걸을

꺾고 온 길이냐.

 

풀 뿌리, 나뭇잎, 뭇 오예(汚穢)로 덮인

어느 항만(港灣)을 비질하여

질식(窒息)에 숨지려는 물결을

일깨우고 온 길이냐.

 

어느 진흙 쌓인 구렁에

소낙비 쏟아 부어

중압(重壓)에 울던 단 샘물

웃겨 주고 온 길이냐.

 

파괴(破壞)의 폭군(暴君)!

그러나 세척(洗滌)과 갱신(更新)의 역군(役軍)아,

세차게 팔을 둘러

허섭쓰레기의 퇴적(堆積)을 쓸어 가라.

 

상인(霜刃)으로 심장(心臟)을 헤쳐

사특, 오만(傲慢), 미온(微溫), 순준(巡逡) 에어 버리면

순진(純眞)과 결백(潔白)에 빛나는 넋이

구슬처럼 새 아침이 빛나기도 하려니.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金尙鎔) 시인 / 1902∼1955

호:월파(月坡). 시인.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

일본 릿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전까지 이화 여전 교수를 지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포와키츠, 램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1939년에 간행한 그의 첫 시집 <망향>에는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 [서글픈 꿈] [노래 잃은 뻐꾹새]등이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우수와 체념이 깃든 관조적인 서정의 세계가 담겨져 있다. 8.15광복 후 군정 시절에 한때 강원도 도지사를 지냈고, 이어서 이화 여대 교수로 있다가 1948년에 도미, 1년 만에 귀국한 후 1.4후퇴 때에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풍자적인 수필집 <무하 선생 방랑기., 시 <산에 묻어>와 번역 작품으로 하디의 소설 <아내를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