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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용철 시인 / 산중문답(山中問答)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12.

박용철 시인 / 산중문답(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

어인 일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나에게 물으니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실린 물이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천지요 인간 세상이 아니로구나

 

 


 

 

박용철 시인 / 어디로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쉬임없이 궂은 비는 내려오고

지나간 날 괴로음의 쓰린 기억

내게 어둔 구름되어 덮이는데.

 

바라지 않으리라던 새론 희망

생각지 않으리라던 그대 생각

번개같이 어둠을 깨친다마는

그대는 닿을 길 없이 높은 데 계시오니

 

아 -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박용철전집, 시문학사, 1939

 

 


 

 

박용철 시인 / 이대로 가랴마는

 

 

설만들 이대로 가기야 하랴마는

이대로 간단들 못 간다 하랴마는

 

바람도 없이 고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판 하늘에 사라져 버리는 구름쪽같이

 

조그만 열로 지금 수떠리는 피가 멈추고

가는 숨길이 여기서 끝맺는다면

 

아-얇은 빛 들어오는 영창 아래서 차마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온 가슴에 젖어 내리네.

 

 


 

 

박용철 시인 / 눈은 내리네

 

 

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내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내리어

우리 함께 빌 때러라


박용철전집, 시문학사, 1939

 

 


 

박용철 [朴龍喆, 1904.6.21~1938.5.12] 시인

1904년 광주 광산(光山) 출생. 호는 용아(龍兒).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도일, 아오야마[靑山]학원 중학부를 거쳐서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에 입학하였으나,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귀국하여 연희전문(延禧專門)에 입학, 수개월 후에 자퇴하고 문학에 전념. 1930년에 김영랑(金永郞)과 함께 《시문학(詩文學)》을 창간, 이 잡지 1호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떠나가는 배」, 「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등을 발표.

《시문학》에 이어 《문예월간(文藝月刊)》 《문학》 등을 계속해서 발간하고 시와 함께 많은 번역시, 그리고 인형의 집」을 비롯하여 「빈의 비극」, 「베니스의 상인」 등의 희곡을 번역. 1931년 이후로는 비평가로서도 크게 활약하여 「효과주의 비평논강(效果主義批評論綱) 」,  「조선문학의 과소평가」,  「시적 변용(詩的變容)에 대하여」 등을 발표,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를 동시에 배격하여 임화(林和)와 논전을 벌임. 사후 1년 만에 《박용철 전집》(전2권)이 간행되었으며,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