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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서정주 시인 / 춘향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13.

서정주 시인 / 춘향

 

 

도령님, 그 날이 端午날 이었나 보옵니다.

廣寒樓 草綠게와 물결친 지붕우에

魂伶 같은 제비가 미끄러져 나부끼든

그대 그때는 그져 아득 하였나이다.

 

언덕 넘어 말방울 소리도 찬란히...

 

내 산 靈魂에 도장 찍고 가옵시는

기쁨 이랄까 슬픔 이랄까 가슴이 항만하여

향그러운 바다속 같은

그대 그때는 그 져아득 하였나이다.

 

 


 

 

서정주 시인 / 추천사

 

 

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香丹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뎀이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조 내어 밀듯이, 香丹아

 

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눌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香丹아. 


서정주시선, 정음사, 1956

 

 


 

 

서정주 시인 / 비밀한 내 사랑이

 

 

- 먼옛날 아무도 안듣는 곳에서 러시아 제국의

어느 여왕이 사뢰온 고백

 

비밀한 내 사랑이

안심치 안해서요

먼 바닷가의 상수리 나무밑에

묻어둔 궤짝 속의

토끼 속에 넣어서

숨겨 놓아 두었에요

 

그래도 그래도 안심치 안해서요

그 토끼의 뱃속에 집어 넣은

한 마리의 암오리의

뱃속의 알 속에다가

숨겨 놓아 두었에요

 

 


 

 

서정주 시인 / 동천(冬天)

 

 

내 마음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워 심어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문학.1966.6)

 

 


 

서정주[徐廷柱,1915.5.18 ~ 2000.12.24] 시인

1915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 중앙고보와 중앙 불교학원에서 수학.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 첫시집 『화사집(花蛇集)』(1941) 이후 『귀촉도(歸蜀途)』(1948), 『신라초(新羅抄)』(1961),『동천(冬天)』(1969), 『鶴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산시』(1991) 등 다수의 시집과 시전문 동인지『시인부락』 간행. 조선청년문학가협회·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동국대 교수 역임. 5·16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의 다수의 賞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