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개벽>(1923.10)-
김소월 시인 / 길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문명>(1925. 12.)-
김소월 시인 / 삭주 구성(朔州龜城)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 리 삭주 구성은 산을 넘은 육천 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개벽>(1923)-
김소월 시인 / 산유화(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진달래꽃>(1924)-
김소월 시인 /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어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배재>(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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