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이하윤 시인 / 들국화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1.
제목 없음

이하윤 시인 / 들국화

 

 

나는 들에 핀 국화를 사랑합니다.

빛과 향기 어느 것이 못하지 않으나

넓은 들에 가엾게 피고 지는 꽃일래

나는 그 꽃을 무한히 사랑합니다.

 

나는 이땅의 시인을 사랑합니다.

외로우나 마음대로 피고 지는 꽃처럼

빛과 향기 조금도 거짓 없길래

나는 그들이 읊은 시를 사랑합니다.

 

 


 

 

이하윤 시인 / 물레방아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바퀴에

한 잎씩 한 잎씩 이 내 추억을 걸면

물 속에 잠겼다 나왔다 돌 때

한없는 뭇 기억이 잎잎이 나붙네

 

바퀴는 돌고 돌며 소리치는데

마음 속은 지나간 옛날을 찾아가

눈물과 한숨만을 자아내 주노니

...........

 

나이 많은 방아지기 하얀 머리에

힘없는 시선은 무엇을 찾는지-

확 속이다! 공잇소리, 찧을 적마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 내리네.

 

 


 

 

이하윤 시인 / 잃어버린 무덤

 

 

북문턱 외딴 길에

풀잎 거칠은

임자 잃은 무덤이

하나 있더니

 

방랑의 손 외로이

지날 때마다

무덤 앞에 앉아서

쉬고 가더니

 

원수의 신작로가

생긴 이후로

패여간 무덤 자취

간 곳 없노라

 

무덤 위에 덮혔던

흙과 잔디는

밟히고 짓밟히는

길이 되어서

 

무거운 발자욱에

눌릴 때마다

애달픈 옛노래를

읊고 있노라

 

임자 잃은 무덤이

하나 있어서

흘러가는 행인이

쉬고 가더니

 

<시대일보> 1926년

 

 


 

이하윤(李河潤) 시인 / 1906∼1974

출생 강원도 이천. 호 연포(蓮圃). 동경 법정(法政)대학 영문과 졸업(1939). 1926년 『시대일보』에 시 「잃어버린 무덤」발표 등단. 외국어문학연구회 동인, 극에술연구회 동인.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 혜화전문, 동국대, 서울대 교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등 역임. 저서-시집『물레방아』(청색지사, 1939), 역시집『실향의 화원』(시문학사, 1933), 『불란서시선』(수선사, 1948) 외 다수. 기타 국민훈장 동백장(1970)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