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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노자영 시인 / 불 사루자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

노자영 시인 / 불 사루자

 

 

아, 빨간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피, 나의 뼈, 나의 살!

< 전적(全的)>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강한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애착, 모든 인습

그리고 모든 설움 모든 아픔을

<전적>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횃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숨겨 있는 모든 거짓, 모든 가면을

 

오 그러면 나는 불이 되리라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그리하여 불로 만든 새로운 자아에 살아 보리라

 

불 타는 불, 나는 영원히 불나라에 살겠다

모든것을 사루고, 모든 것을 녹이는 불나라에

살겠다.

 

< 백조>1923.6

 

 


 

 

노자영 시인 / 추억

 

 

지나간 옛 자취를......

더듬어가다가

눈을 감고 잠에 빠지면......

 

아, 옛일은 옛일은

꿈에까지 와서

이렇게도 나의 맘을

울려주는가?

 

꿈에 놀란 외론 몸이

눈을 뜨며는......

새벽닭 우는 하늘 저편에

지새는 별이 이 눈물 비친다.

 

 


 

 

노자영 시인 / 장미

 

 

장미가 곱다고

꺾어보니까

꽃포기마다

 

가시입니다

사랑이 좋다고

따라가 보니까

그 사랑 속에는 눈물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은

 

모든 사람은

가시의 장미를 꺾지 못해서

그 눈물 사랑을 얻지 못해서

섧다고 섧다고 부르는구려

 

 


 

 

노자영 시인 / 이밤에 누군가 아니 오려나

 

 

껴안고 싶도록

부드러운 봄밤!

혼자 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눈물 나오는 애타는 봄밤!

 

창밑에 고요히 대굴거리는

옥빛 달줄기 잠을 자는데

은은한 웃음에 눈을 감는

살구꽃 그림자 춤을 춘다.

 

야앵(夜鶯)의 우는 고운 소래가

밤놀을 타고 날아 오나니

행여나 우리님 그 노래 타고

이 밤에 한 번 아니 오려나!

 

 


 

노자영(盧子泳) 시인 / 1901-1940

호 춘성(春城). 황해도 장연(長淵) 출생. 니혼[日本]대학 문과 수업. 1919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매일신보(每日申報)》에 당선된 시 《월하(月下)의 몽(夢)》을 비롯하여 《애우(愛友)를 잃고》 《우천(雨天)》 《파몽(破夢)》 등을 발표하고, 《백조(白潮)》 창간동인으로 참가하여 계속 시와 수필을 발표하였다. 소녀적인 센티멘털리즘으로 일관하여 자기의 시에 ‘수필시(隨筆詩)’라는 특이한 명칭을 붙이기도 하였다.

1934년에는 잡지 《신인문학(新人文學)》을 창간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조선일보사에서 《조광(朝光)》 《여성(女性)》의 편집에 관여하였다. 작품으로는 시집 《처녀의 화환》(1924) 《내 혼이 불탈 때》(1928) 《백공작(白孔雀)》(1938) 이외에 수상집 《인생 안내》 등이 있으나, 당시의 인기에 비하여 후세에 그다지 거론되지 않는 것은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감상에 흘러 시대성과 역사성을 외면한 데에 그 이유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