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강 시인 / 언덕
언덕은 늙은 어머니의 어깨와 같다.
마음이 외로워 언덕에 서면 가슴을 치는 슬픈 소리가 들렸다 언덕에선 넓은 들이 보인다
먹구렝이처럼 달아나는 기차는 나의 시름을 싣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언덕엔 푸른 풀 한포기도 없었다
들을 보면서 나는 날마다 날마다 가까워 오는 봄의 화상을 찾고 있었다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윤곤강 시인 / 입추
소리 있어 귀 기울이면 바람에 가을이 묻어오는,
바람 거센 밤이면 지는 잎 창에 와 울고,
다시 가만히 귀 모으면 가까이 들리는 머언 발자취.
낮은 게처럼 숨어 살고 밤은 단잠 설치는 버릇,
나의 밤에도 가을은 깃들어 비인 마음에 찬 서리 내린다.
윤곤강 시인 / 세월(歲月)
소리 있어 귀 기울이면 바람에 가을이 묻어오는,
바람 거센 밤이면 지는 잎 창에 와 울고,
다시 가만히 귀 모으면 가까이 들리는 머언 발자취.
낮은 게처럼 숨어 살고 밤은 단잠 설치는 버릇,
나의 밤에도 가을은 깃들어 비인 마음에 찬 서리 내린다.
윤곤강 시인 / 황소
바보 미련둥이라 흉보는 것을 꿀꺽 참고 음메! 우는 것은
지나치게 성미가 착한 탓이란다 삼킨 콩깍지를 되넘겨 씹고 음메 울며 슬픔을 삭이는 것은
두 개의 억센 뿔이 없는 탓은 아니란다
윤곤강 시인 / 지렁이의 노래
아지못게라 검붉은 흙덩이속에 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 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 났는가
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관이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여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 닥쳐올 앞날은 더욱 더 모르노라 다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
낮은 진구렁 개울속에 선잠을 엮고 밤은 사람들이 버리는 더러운 쓰레기속에 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부르노니
오직 소리없이 고요한 밤만이 나의 즐거운 세월이노라
집도 절도 없는 나는야 남들이 좋다는 햇볕이 싫어 어둠의 나라 땅밑에 번듯이 누워 흙물 달게 빨고 마시다가 비 오는 날이면 따 우에 기어나와 갈 곳도 없는 길을 헤매노니
어느 거츤 발길에 채이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고 두도막에 잘려도 붉은 피 흘리며 흘리며 나는야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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