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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은상 시인 / 가고파(2)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2.

이은상 시인 / 가고파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든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데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나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 가 알아보나

내 몫엣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處子)들 어미 되고 동자(童子)들 아비 된 사이

인생(人生)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없은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福)된 자(者)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 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夕陽)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거나 깨끗이도 깨끗이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오륙도(五六島)

 

 

五六島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五六島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먼 바다라

오늘은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엣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五六島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이은상 시인 / 성불사(成佛寺)의 밤

 

 

成佛寺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主僧)은 잠이 들고 객(客)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렇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소경되어지이다

 

 

뵈오려 안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지이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설악산

 

 

설악산이여!

이 밤만 지나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의 품속을 벗어나

티끌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애닯은 한말씀

애원과 기도를 드립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여기와

흐르는 물 마셔 피가 되었고

푸성귀 먹어 살과 뼈되고

향기론 바람 내 호흡되어

이제는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걸 믿고 갑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사는 동안

무슨 슬픔이 또 있으리이오.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통분할 일이 겹칠적이면

언제나 사랑의 세례를 받으려

당신만을 찾으리이다.

 

 


 

 

 이은상(李殷相) 시인 / 1903∼1982

시조 시인. 호는 노산(鷺山).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 사립 창신 학교 고등과를 나와 1923년에 연희 전문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유학,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서 수업하였다. 그 후 월간지 <신생>을 편집했고, 1931년에 이화 여전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호남 신문>사장과 서울대, 영남대 교수등을 지냈고, 1954년에는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 사업 회장, 민족 문화 협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시조 작가 협회장 및 숙명 여대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에 노산 시조 문학상을 제정하였고, 1981년에 국정 자문 위원에 위촉되었다.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 [가고파]등으로 고유한 전통의 시 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고, 1932년에 간행된 <노산 시조집>은 1920년대의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의 시조 부흥론에 의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저서에는 <이충무공 일대기> <민족의 향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