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 시인 / 가고파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든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데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나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 가 알아보나 내 몫엣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處子)들 어미 되고 동자(童子)들 아비 된 사이 인생(人生)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없은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福)된 자(者)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 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夕陽)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거나 깨끗이도 깨끗이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오륙도(五六島)
五六島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五六島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먼 바다라 오늘은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엣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五六島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이은상 시인 / 성불사(成佛寺)의 밤
成佛寺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主僧)은 잠이 들고 객(客)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렇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소경되어지이다
뵈오려 안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지이다.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2
이은상 시인 / 설악산
설악산이여! 이 밤만 지나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의 품속을 벗어나 티끌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애닯은 한말씀 애원과 기도를 드립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여기와 흐르는 물 마셔 피가 되었고 푸성귀 먹어 살과 뼈되고 향기론 바람 내 호흡되어 이제는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걸 믿고 갑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사는 동안 무슨 슬픔이 또 있으리이오.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통분할 일이 겹칠적이면 언제나 사랑의 세례를 받으려 당신만을 찾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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