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 / 겨울밤의 꿈
저녁 한동안 가난한 시민(市民)들의 사로가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개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食後)에 석간(夕刊)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食後)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煉炭)가스는 가만가만히 쥐라기의 지층(地層)으로 내려간다 그날 밤 가난한 서울의 시민(市民)들은 꿈에 볼 것이다 날개에 산호빛 발톱을 달고 앞다리에 세 개나 새끼 공룡(恐龍)의 순금(純金)의 손을 달고 서양(西洋) 어느 학자(學者)가 Archaeopteryx라 불렀다는 쥐라기(紀)의 새와 같은 새가 한 마리 연탄(煉炭)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 제일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앉는 것을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마산사건에 희생된 소년들의 영전에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또는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 너는 보았는가·····뿌린 핏방울을,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1960년 3월 15일 너는 보았는가·····야음을 뚫고 나의 고막도 뚫고 간 그 많 총탄의 행방을····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또는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서 이었다 끊어졌다 밀물치던 그 아우성의 노도를····· 너는 보았는가····· 그들의 앳된 얼굴 모습을····· 뿌린 핏방울은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국제신보> 1960. 3. 28)
김춘수 시인 / 타령조(打令調) (3)
지귀(志鬼)야, 네 살과 피는 삭발(削髮)을 하고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서 독경(讀經)이나 하지. 환장한 너는 종로(鐘路) 네거리에 가서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둣발에 차이기나 하지. 금팔찌 한 개를 벗어 주고 선덕여왕(善德女王)께서 도리천의 여왕(女王)이 되신 뒤에 지귀(志鬼)야, 네 살과 피는 삭발(削髮)을 하고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서 독경(讀經)이나 하지. 환장한 너는 종로(鍾路) 네거리에 가서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둣발에 차이기나 하지. 때마침 내리는 밤과 비에 젖기나 하지. 오한(惡寒)이 들고 신열이 나거들랑 네 살과 피는 또 한번 삭발(削髮)을 하고 지귀(志鬼)야, 남천(南天), 근역서재, 1977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기림 시인 / 봄은 전보도 안 치고 외 3편 (0) | 2019.09.19 |
---|---|
김규동 시인 / 재판 외 3편 (0) | 2019.09.19 |
김기림 시인 / 바다 외 2편 (0) | 2019.09.18 |
김규동 시인 / 유리씨즈 외 3편 (0) | 2019.09.18 |
김춘수 시인 / 무구(無垢)한 그들의 죽음과 나의 고독(孤獨) 외 3편 (0) | 2019.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