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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춘수 시인 / 겨울밤의 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9.

김춘수 시인 / 겨울밤의 꿈

 

 

저녁 한동안 가난한 시민(市民)들의

사로가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개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食後)에 석간(夕刊)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食後)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煉炭)가스는 가만가만히

쥐라기의 지층(地層)으로 내려간다

그날 밤

가난한 서울의 시민(市民)들은

꿈에 볼 것이다

날개에 산호빛 발톱을 달고

앞다리에 세 개나 새끼 공룡(恐龍)의

순금(純金)의 손을 달고

서양(西洋) 어느 학자(學者)가

Archaeopteryx라 불렀다는

쥐라기(紀)의 새와 같은 새가 한 마리

연탄(煉炭)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

제일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앉는 것을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마산사건에 희생된 소년들의 영전에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또는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

너는 보았는가·····뿌린 핏방울을,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1960년 3월 15일

너는 보았는가·····야음을 뚫고

나의 고막도 뚫고 간

그 많 총탄의 행방을····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또는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서

이었다 끊어졌다 밀물치던

그 아우성의 노도를·····

너는 보았는가····· 그들의 앳된 얼굴 모습을·····

뿌린 핏방울은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국제신보> 1960. 3. 28)

 

 


 

 

김춘수 시인 / 타령조(打令調) (3)

 

지귀(志鬼)야,

네 살과 피는 삭발(削髮)을 하고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서

독경(讀經)이나 하지.

환장한 너는

종로(鐘路) 네거리에 가서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둣발에 차이기나 하지.

금팔찌 한 개를 벗어 주고

선덕여왕(善德女王)께서 도리천의 여왕(女王)이 되신 뒤에

지귀(志鬼)야,

네 살과 피는 삭발(削髮)을 하고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서

독경(讀經)이나 하지.

환장한 너는

종로(鍾路) 네거리에 가서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둣발에 차이기나 하지.

때마침 내리는

밤과 비에 젖기나 하지.

오한(惡寒)이 들고 신열이 나거들랑

네 살과 피는 또 한번 삭발(削髮)을 하고

지귀(志鬼)야,

남천(南天), 근역서재, 1977

 

 


 

김춘수 시인(金春洙 1922년-2004년)

아명은 대여(大.餘).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