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시인 / 유리씨즈
성벽(城壁)처럼 드높은 하얀 벽(壁)에 펑하니 뚫려진 구형(矩形)의 창(窓)―창(窓)아래 앉은 사람들은 할일 없이 무슨 맛인지 모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날. 1955년(年)의 마감날― 하늘은 깊은 안개 모양으로 흐리고 검은 구름이 머루넝쿨처럼 엉켜져 있었다. 은행(銀行)과 상사(商社)에서는 이 해의 마지막 결산(決算)을 매기기에 분주하였으나 나는 무료히 1955년(年)의 뭇 기억(記憶)들을 내 두뇌(頭腦)의 강(江)물에 흘려보내며 한 포기의 서정(抒情)을 기르고 있었다.
―마을에는 낡은 기왓장이 흩어지고 성긴 소나무 숲이 있는 공동묘지(共同墓地)에는 희스므레 흰눈이 놓여져 있었다. 빈 정적(靜寂) 속에 이따금 들려오는 마을 아이들의 부르는 소리. 정미소(精米所)에서 울리는 발동기(發動機) 소리. 그런 소음(騷音)들의 이끼낀 권태(倦怠)속에서 나는 조용한 시간(時間)들을 키우면서 내 작은 생애(生涯)의 일기(日記)들을 정리(整理)하여 갔을 뿐이다―.
Gertrude Stein, Wyndham Lewis, Virginia Woolf, D.H. Lawrence, Oscar Wilde, James Joyce― 이런 사람들의 영상(映像)과 이들의 그리운 생애(生涯)…….
지금은 하루의 직책(職責)이 끝난 편안한 시간(時間), 장난감 기차(汽車)처럼 달리는 무전기(無電機)의 회화(會話)와 주(主)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라디오의 노래 소리가 흰 실내(室內)에 나와 함께 남아 있다. 이 정적(靜寂)의 광야(曠野)에서 나는 죽음처럼 싸늘한 내 정신(精神)의 화석(化石)을 매만지며 서글픈 연기자(演技者)― 오늘 하루의 괴로움들을 돌아다 본다. 아득히 멀어진 망각(忘却)의 언덕에 조약돌 모양 흩어진 갸냘픈 시체(屍體)여! 이미 부러진 연장과 맥이 풀린 나의 분장한 영상(映像)에 회색(灰色)빛 계절(季節)은 나부껴 오고―애인(愛人) 나타―리의 난잡(亂雜)한 소식(消息)이 오늘도 자살(自殺)을 못해서 서글픈 나의 가슴에 한줄기 애수(哀愁)를 뿌리고 간다 ―임이여 사랑하는 임이여 그대가 마련하는 일과(日課) 속에 인형(人形)처럼 순종(順從)하였던 나는 당신의 위대(偉大)한 종이었습니다. 나에게 죄(罪)가 있다면 그대를 사랑했다는 죄(罪)밖에 또 무엇일까요? 너무나 무자비(無慈悲)했던 나의 임이여―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의 종말(終末)―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조용한 회상(回想)의 바다뿐이올시다.
피곤(疲困)이 철사(鐵絲)처럼 감기는 이른 봄의 정오(正午)― 가족(家族)과 신화(神話)― 뭇 비극(悲劇)의 가시덤불 속을 왕래(往來)하며 행복(幸福)한 시민(市民)의 대열(隊列)속에 내 인생(人生)의 숙명(宿命)들을 돌아다 본다. 그러나 어두운 내 청각(聽覺)에 먼 바다 우짖음처럼 들려오는 위대(偉大)한 청춘(靑春)의 숨결이여― 뽀―드렐, 에드가․엘란․포우―, 아인슈타인, 키에르케고르. 도스트옙스키……그것은 죽지 않는 영원(永遠)한 장미(薔薇)― 빛 나는 기류(氣流)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신화, 위성문화사, 1958
김규동 시인 / 유모차를 끌며
그 신문사 사장은 변변치 못한 사원을 보면 집에서 아이나 보지 왜 나오느냐고 했다 유모차를 끌며 생각하니 아이 보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 먹이는 일 목욕 시켜 잠재우는 일은 책 보고 원고 쓸 시간을 군말 없이 바치면 되는 것이지만 공연히 떼쓰거나 마구 울어댈 때는 귀가 멍멍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이 되니 이 경황에 무슨 노랜들 부를 수 있겠느냐 순수가 어디 있고 고상한 지성이 어디 있냐 신기한 것은 한마디 말도 할 줄 모르는 것이 때로 햇덩이 같은 웃음을 굴리는 일이로다 거친 피부에 닿는 너의 비둘기 같은 체온 어린것아 네게 있어선 모든 게 새롭고 황홀한 것이구나 남북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방실거리고 자랄 미국도 일본도 소련도 핵폭탄도 식민지도 모르고 자랄 통일조선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 아이들 내일을 위해선 우리네 목숨쯤이야 초로 같은 것이면 어떠냐 탄환막이라도 되어주마 우리를 딛고 일어서라 우리 시대는 틀렸다지만 너희들은 기어이 통일된 나라 만나리라 숨막히는 열기 속에 쫓겨 달리는 차량의 물결을 스쳐 미친 바람 넘실대는 거리를 삐걱이는 유모차를 끈다 통일을 만날 어린것을 태운 유모차 끄는 일은 시 쓰는 일을 미뤄두고라도 백번 눈물겹고 신나는 노동이구나.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의식의 나무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부러지지 않고 서서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죽지 않고 서서 우리가 죽은 뒤에도 말없이 서서 하늘로 뻗어오르며 구름이 되고 빛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생각하는 나무여 아 부드러운 나무의 뼈.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이카로스 비가(悲歌)
낙하하지 않고는 심연을 알 수 없다 그때 비로소 의식은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단애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죽은 말소리와 끈질긴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한 자루 연필이나 짐짝처럼 구르며 임리한 물질인 스스로를 키워간다 어찌 코와 눈과 팔다리의 움직임만으로 뜨겁다든가 차다든가 하는 저 흐름의 흔적만으로 멸하여가는 것을 증명한다 할 수 있을까 있다는 것만으로 물질은 거기 보이고 우리의 오늘과 내일은 사라진다 우선 끊어야 할 것이 있는데 고통스런 반복과 뭉개진 인정 사이에서 끊어야 할 것이 있는데 단애에 울리는 파도 소리는 어둡고 차다 모순의 안과 밖에 흩어지는 언어 머리를 풀어헤친 수목의 그늘이 쓰러진 생활의 잔해에 옛날처럼 따스한 속삭임의 몸짓을 보내나 지평선을 달리는 경직된 이성이 슬픔의 중심을 알 까닭이 없다 하여 산다는 것은 더욱 갇힌다는 것이고 어디를 바라봐도 약속처럼 매여 있다는 것이다 무의미한 말의 집적에 눌려 타인같이 어두운 거울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꿔본다는 것이다 고독은 때로 관능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물질과 물질이 부딪는 사소한 소음에도 이처럼 살벌한 꿈을 꾸게 되나 보다 이카로스여 날개여 그대와 우리 사이에 교감하는 이 흔들림의 선율은 무엇인가 가슴에 파고드는 이 침묵의 뜻은 무엇인가.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춘수 시인 / 겨울밤의 꿈 외 2편 (0) | 2019.09.19 |
---|---|
김기림 시인 / 바다 외 2편 (0) | 2019.09.18 |
김춘수 시인 / 무구(無垢)한 그들의 죽음과 나의 고독(孤獨) 외 3편 (0) | 2019.09.18 |
김기림 시인 / 두견새 외 3편 (0) | 2019.09.17 |
김규동 시인 / 어머님전(前) 상서(上書) 외 3편 (0) | 2019.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