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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유리씨즈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8.

김규동 시인 / 유리씨즈

 

 

성벽(城壁)처럼 드높은 하얀 벽(壁)에 펑하니 뚫려진 구형(矩形)의 창(窓)―창(窓)아래 앉은 사람들은 할일 없이 무슨 맛인지 모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날. 1955년(年)의 마감날― 하늘은 깊은 안개 모양으로 흐리고 검은 구름이 머루넝쿨처럼 엉켜져 있었다. 은행(銀行)과 상사(商社)에서는 이 해의 마지막 결산(決算)을 매기기에 분주하였으나 나는 무료히 1955년(年)의 뭇 기억(記憶)들을 내 두뇌(頭腦)의 강(江)물에 흘려보내며 한 포기의 서정(抒情)을 기르고 있었다.

 

―마을에는 낡은 기왓장이 흩어지고 성긴 소나무 숲이 있는 공동묘지(共同墓地)에는 희스므레 흰눈이 놓여져 있었다. 빈 정적(靜寂) 속에 이따금 들려오는 마을 아이들의 부르는 소리. 정미소(精米所)에서 울리는 발동기(發動機) 소리. 그런 소음(騷音)들의 이끼낀 권태(倦怠)속에서 나는 조용한 시간(時間)들을 키우면서 내 작은 생애(生涯)의 일기(日記)들을 정리(整理)하여 갔을 뿐이다―.

 

Gertrude Stein, Wyndham Lewis, Virginia Woolf, D.H. Lawrence, Oscar Wilde, James Joyce―

이런 사람들의 영상(映像)과 이들의 그리운 생애(生涯)…….

 

지금은 하루의 직책(職責)이 끝난 편안한 시간(時間), 장난감 기차(汽車)처럼 달리는 무전기(無電機)의 회화(會話)와 주(主)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라디오의 노래 소리가 흰 실내(室內)에 나와 함께 남아 있다. 이 정적(靜寂)의 광야(曠野)에서 나는 죽음처럼 싸늘한 내 정신(精神)의 화석(化石)을 매만지며 서글픈 연기자(演技者)― 오늘 하루의 괴로움들을 돌아다 본다. 아득히 멀어진 망각(忘却)의 언덕에 조약돌 모양 흩어진 갸냘픈 시체(屍體)여! 이미 부러진 연장과 맥이 풀린 나의 분장한 영상(映像)에 회색(灰色)빛 계절(季節)은 나부껴 오고―애인(愛人) 나타―리의 난잡(亂雜)한 소식(消息)이 오늘도 자살(自殺)을 못해서 서글픈 나의 가슴에 한줄기 애수(哀愁)를 뿌리고 간다 ―임이여 사랑하는 임이여 그대가 마련하는 일과(日課) 속에 인형(人形)처럼 순종(順從)하였던 나는 당신의 위대(偉大)한 종이었습니다. 나에게 죄(罪)가 있다면 그대를 사랑했다는 죄(罪)밖에 또 무엇일까요? 너무나 무자비(無慈悲)했던 나의 임이여―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의 종말(終末)―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조용한 회상(回想)의 바다뿐이올시다.

 

피곤(疲困)이 철사(鐵絲)처럼 감기는 이른 봄의 정오(正午)― 가족(家族)과 신화(神話)― 뭇 비극(悲劇)의 가시덤불 속을 왕래(往來)하며 행복(幸福)한 시민(市民)의 대열(隊列)속에 내 인생(人生)의 숙명(宿命)들을 돌아다 본다. 그러나 어두운 내 청각(聽覺)에 먼 바다 우짖음처럼 들려오는 위대(偉大)한 청춘(靑春)의 숨결이여― 뽀―드렐, 에드가․엘란․포우―, 아인슈타인, 키에르케고르. 도스트옙스키……그것은 죽지 않는 영원(永遠)한 장미(薔薇)― 빛 나는 기류(氣流)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신화, 위성문화사, 1958

 

 


 

 

김규동 시인 / 유모차를 끌며

 

 

그 신문사 사장은

변변치 못한 사원을 보면

집에서 아이나 보지 왜 나오느냐고 했다

유모차를 끌며 생각하니

아이 보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 먹이는 일

목욕 시켜 잠재우는 일은

책 보고 원고 쓸 시간을

군말 없이 바치면 되는 것이지만

공연히 떼쓰거나

마구 울어댈 때는 귀가 멍멍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이 되니

이 경황에 무슨 노랜들 부를 수 있겠느냐

순수가 어디 있고 고상한 지성이 어디 있냐

신기한 것은

한마디 말도 할 줄 모르는 것이

때로 햇덩이 같은 웃음을

굴리는 일이로다

거친 피부에 닿는 너의 비둘기 같은 체온

어린것아 네게 있어선

모든 게 새롭고 황홀한 것이구나

남북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방실거리고 자랄

미국도 일본도 소련도

핵폭탄도 식민지도 모르고 자랄

통일조선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 아이들 내일을 위해선

우리네 목숨쯤이야 초로 같은 것이면 어떠냐

탄환막이라도 되어주마

우리를 딛고 일어서라

우리 시대는 틀렸다지만

너희들은 기어이 통일된 나라 만나리라

숨막히는 열기 속에 쫓겨 달리는

차량의 물결을 스쳐

미친 바람 넘실대는 거리를

삐걱이는 유모차를 끈다

통일을 만날 어린것을 태운

유모차 끄는 일은

시 쓰는 일을 미뤄두고라도

백번 눈물겹고 신나는 노동이구나.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의식의 나무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부러지지 않고 서서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죽지 않고 서서

우리가 죽은 뒤에도

말없이 서서

하늘로 뻗어오르며

구름이 되고 빛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생각하는 나무여

아 부드러운 나무의 뼈.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이카로스 비가(悲歌)

 

 

낙하하지 않고는 심연을 알 수 없다

그때 비로소 의식은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단애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죽은 말소리와

끈질긴 세월의 틈바구니에서

한 자루 연필이나 짐짝처럼 구르며

임리한 물질인 스스로를 키워간다

어찌 코와 눈과 팔다리의 움직임만으로

뜨겁다든가 차다든가 하는

저 흐름의 흔적만으로

멸하여가는 것을 증명한다 할 수 있을까

있다는 것만으로 물질은 거기 보이고

우리의 오늘과 내일은 사라진다

우선 끊어야 할 것이 있는데

고통스런 반복과 뭉개진 인정 사이에서

끊어야 할 것이 있는데

단애에 울리는 파도 소리는 어둡고 차다

모순의 안과 밖에 흩어지는 언어

머리를 풀어헤친 수목의 그늘이

쓰러진 생활의 잔해에

옛날처럼 따스한 속삭임의 몸짓을 보내나

지평선을 달리는 경직된 이성이

슬픔의 중심을 알 까닭이 없다

하여

산다는 것은 더욱 갇힌다는 것이고

어디를 바라봐도

약속처럼 매여 있다는 것이다

무의미한 말의 집적에 눌려

타인같이 어두운 거울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꿔본다는 것이다

고독은 때로 관능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물질과 물질이 부딪는 사소한 소음에도

이처럼 살벌한 꿈을 꾸게 되나 보다

이카로스여 날개여

그대와 우리 사이에 교감하는

이 흔들림의 선율은 무엇인가

가슴에 파고드는 이 침묵의 뜻은 무엇인가.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