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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고향(故鄕)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0.

김규동 시인 / 고향(故鄕)

 

 

고향엔

무슨 뜨거운 연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山)을 둘르고 돌아 앉아서

산(山)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는 마을

 

마을에선 먼 바다가 그리운 포푸라 나무들이

목메어 푸른 하늘에 나부끼고

 

이웃 낮닭들은 홰를 치며

한가히 고전(古典)을 울었다.

 

고향엔 고향엔

무슨 뜨거운 연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 / 곡예사(曲藝師)

 

 

가벼우나 슬픈 음악(音樂).

관객(觀客)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 할 때,

곡예사(曲藝師)의 가슴엔

싸늘한 바람이 스쳐 간다.

 

아슬아슬한 새 기술(技術)을 부리기 위하여

파리한 얼굴의 여자(女子)와

표정 없는 구리빛 가슴의 사나이가

줄을 타고 오를 때

껌을 씹으며 담배를 피우며 과자를 먹으며

얼마나 신기한 기대(期待)를 보내는 관중(觀衆)들이었던가.

 

이런 상업(商業)일수록 인기가 있어야 하고

또 새로운 멋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곡예사(曲藝師)는

오늘도 위험(危險)한 공간(空間) 속에 살아야 한다.

 

이쪽 그네에서

저쪽 그네에로

서로 옮겨 탄 순간(瞬間)과 순간(瞬間).

 

담배 연기 자욱한

아득한 하늘 위에서

아 저러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그런 것은 벌써 잊어버린

곡예사(曲藝師)의 어저께와 오늘―

 

하얀 손의 여자(女子)여

곡예사(曲藝師)에

너의 입술에 어린

떨리는 생명(生命)의 포말들을 삼키며

아 인간(人間)은

왜 이처럼 잔인(殘忍)해야만 하는가.

 

원폭(原爆)의 하늘처럼

소란한 오늘의 기류(氣流)―

그 속에서 오히려

네가 지니는 한 오리의 질서(秩序)가

오늘은 무한(無限)한 기쁨처럼 나를 울린다.

 

현대의 신화, 위성문화사, 1958

 

 


 

 

김규동 시인 / 기러기

 

 

얘야

숨을 죽이고

기러기 울음 소리를 듣자

이북 고향에서 내려오는

저 새의 속삭임을

조심조심 밤하늘에 놓이는

이 울음은

내 어머님의 소식이요

네 삼촌과 고모의 안부도 전하는

고마운 말이다

두만강 끝에서

백두산을 스쳐 개마고원 금강산을 넘고

아득히 휴전선도 지나

한양 서울까지

조선의 깊은 하늘을 날으는

저 부드러운 숨결은

바람처럼 물처럼

가슴을 적셔주는구나

얘야

이제는 정말 가야 한다

형제들 애타게 기다리는 저 북으로

생각하면

끊어야 할 것이 어찌 한두 가지냐

수많은 것을 끊고

이 40년 통한의 슬픔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

7천만이 한몸이 되어

이 죽음의 사슬을 끊자

독재와 억압, 착취와 분노의 어둠을 뚫고

외세에 묶인 설움의 세월을 청산하자

한라에서 백두까지

오 백두에서 한라까지

자주 해방의 날 이룩하자

얘야 숨을 죽이고 들어보아라

오늘 밤 북에서 오는 저 손님은

이제 때가 왔음을 일러주고 있다

통일의 밝은 빛이 트여옴을

알려주는구나

또 전하기를

백 살 난 내 어머님도 여태 살아 계시고

네 삼촌과 고모도

백두산 밑 그 옛 터에 잘들 살고 있단다

올해는 풍년이 들어

누런 들가엔 겨례의 노랫소리 흥청거린다고

기러기 끼이욱 끼욱……

반가운 소식 전해주는구나.

 

오늘밤 기러기떼는, 동광출판사, 1989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