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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춘수 시인 / 계단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0.

김춘수 시인 / 계단

 

 

거기 중간쯤 어디서

귀뚜라미가 실솔이 되는 것을 보았다

부르르 수염이 떨고 있었다

그때가 물론 가을이다

끄트머리 계단 하나가 하늘에 가 있었다

 

 


 

 

김춘수 시인 / 나의 하느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타령조(打令調).기타(其他), 문화출판사, 1969

 

 


 

 

김춘수 시인 / 네가 가던 그 날은

 

 

네가 가던 그 날은

나의 가슴이

가녀린 풀잎처럼 설레이었다

 

하늘은 그린 듯이 더욱 푸르고

네가 가던 그 날은

가을이 가지 끝에 울고 있었다

 

구름이 졸고 있는

산마루에

단풍잎 발갛게 타며 있었다

 

네가 가던 그 날은

나의 가슴이

부질없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김춘수 시인 / 노새를 타고

 

 

기러기는 울지마,

기러기는 날면서 끼루룩 끼루룩 울지 마,

바람은 죽어서 마을을 하나 넘고 둘 넘어

가지 마,멀리 멀리 가지 마,

왜 이미 옛날에 그런 말을 했을까.

도요새는 울지 마,

달맞이꽃은 여름밤에만 피지 마,

언뜻언뜻 살아나는 풀무의 불꽃,

풀무의 파란 불꽃.

 

 


 

 

김춘수 시인 / 능금

 

 

1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祝祭)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餘韻)을 새긴다

 

2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時時刻刻)의 그의 충실(充實)만이

익어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愛撫)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微笑)를 따라가며는

세월(歲月)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김춘수 시인(金春洙 1922년-2004년)

 

아명은 대여(大.餘).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