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3.1절에 부치는 노래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9.

김규동 시인 / 3.1절에 부치는 노래

 

 

목메인 만세 소리

땅을 뚫고 터져나오는 아우성 소리

아! 이 날은 다시 돌아오고,

삼천만 겨레의 흰 행렬(行列)이

거리와 하늘을 가고 있다.

 

얼마나 긴 인내(忍耐)의 세월이었던가.

독립(獨立)과 자유(自由)를 그려

암흑(暗黑)과 형(刑)틀과 압박을 박차고

독재자의 총칼 앞에

분화처럼 일어서던 민족의 분노(憤怒)가

산하(山河)를 진동(震動)하고,

천추에 못잊을 겨레의 원한(怨恨)이

세기(世紀)의 하늘위에 산화(散華)하던 날―

하늘과 태양(太陽)

산천(山川)과 초목(草木)도

애달픈 슬픔 속에 잠겨 갔어라.

 

의(義)롭고 뜨거운 가슴마다

장미(薔薇) 모양 붉게 피는 선혈(鮮血)의 강(江)―

 

위대(偉大)한 민족의 의지(意志)는

하늘 높이 치솟고,

수천(數千)의 깃발은

독립(獨立)의 탑(塔)에 나부꼈노라.

얼마나 찬란한

민족의 제전(祭典)이었던가.

 

오래인 시간(時間)의 흐름

비록 우리들의 상흔(傷痕)을 스쳐갔다 하여도

꿈에도 잊힐 리 없는

그날의 추억(追憶)은

꺼질 줄 모르는 연정(戀情) 모양

민족의 혈관(血管) 속에 되살아 오거니……

삼월(三月)이여

너의 연가(戀歌) 속에

우리들의 대열(隊列)이 굽이쳐 간다.

 

그러나

아직도 못다 이룬 통일독립(統一獨立)의 여명(黎明)

삼․일(三․一)에 바친

민족의 넋과 기개(氣慨),

또 한번 다시 뭉쳐

금없는 민족의 내일(來日)을 이룩하리니,

 

위대(偉大)한 민족(民族)의 의지(意志)여

삼월(三月)달 샛바람 속에

그대 힘찬 승리(勝利)의 노래를

교향(交響)하여라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 / 3월의 꿈

 

 

3월달이라면

해도 30리쯤 길어져서

게으른 여우가

허전한 시장기 느낄 때다

오 함경도의 산

첩첩준봉에

흰 이빨 드러낸 눈더미

아직 찬바람에

코끝이 시린데

끝없이 흐르는 두만강의 숨소리

너무 가깝다

느릅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멀리 바라보이는 개울가

버들꽃 늘어진 눈물겨움,

마른 풀 사르는 냄새 나는

신작로 길을 홀로 걷고 있는 저분은

누구의 어머님인가

외롭고 어여쁜 걸음걸이

어머님이시여 어머님이시여

햇빛이 희고 정다우니

진달래도 피지 않은 고향산천에

바람에 날리는 봄이 왔나 봐요

봄이 왔어요.

 

오늘밤 기러기떼는, 동광출판사, 1989

 

 


 

 

김규동 시인 / 가족

 

 

둘은 가버리고

막내가 남았다

너도 이윽고 어디론가

가야 하겠지

빈 책상 서랍을

열었다 닫는다

하늘이 푸르구나

뭘한다고 셋씩이나 낳아

이 고생 하느냐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이제 내 펜대의 사념도 침묵에 싸인다

얘들아

다 크고 나면 그저 이렇게 멋없느나

아직도 내 잔등에 가물거리는 것

너희들이 목마를 타던

고사리 손의 감촉이고나.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검은 날개

 

 

1초(秒)

2초(秒)

 

검은 날개여!

 

3초(秒)

4초(秒)

 

무거운 하늘의

회색(灰色) 뚜껑을 열어제끼고

모든 신(神)들은

세기(世紀)의 종말(終末)위에

검은 화환(花環)을 뿌리며

지상(地上)의 희극(喜劇) 앞에

눈을 감는다.

 

쇠잔(衰殘)한 태양(太陽)처럼 또는

침묵(沈黙)한 해협(海峽)과도 같이.

 

이윽고

먼 하늘에 상장(喪章)처럼

날리는

오! 화려(華麗)한 그림자여

검은 날개여!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