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시인 / 3.1절에 부치는 노래
목메인 만세 소리 땅을 뚫고 터져나오는 아우성 소리 아! 이 날은 다시 돌아오고, 삼천만 겨레의 흰 행렬(行列)이 거리와 하늘을 가고 있다.
얼마나 긴 인내(忍耐)의 세월이었던가. 독립(獨立)과 자유(自由)를 그려 암흑(暗黑)과 형(刑)틀과 압박을 박차고 독재자의 총칼 앞에 분화처럼 일어서던 민족의 분노(憤怒)가 산하(山河)를 진동(震動)하고, 천추에 못잊을 겨레의 원한(怨恨)이 세기(世紀)의 하늘위에 산화(散華)하던 날― 하늘과 태양(太陽) 산천(山川)과 초목(草木)도 애달픈 슬픔 속에 잠겨 갔어라.
의(義)롭고 뜨거운 가슴마다 장미(薔薇) 모양 붉게 피는 선혈(鮮血)의 강(江)―
위대(偉大)한 민족의 의지(意志)는 하늘 높이 치솟고, 수천(數千)의 깃발은 독립(獨立)의 탑(塔)에 나부꼈노라. 얼마나 찬란한 민족의 제전(祭典)이었던가.
오래인 시간(時間)의 흐름 비록 우리들의 상흔(傷痕)을 스쳐갔다 하여도 꿈에도 잊힐 리 없는 그날의 추억(追憶)은 꺼질 줄 모르는 연정(戀情) 모양 민족의 혈관(血管) 속에 되살아 오거니…… 삼월(三月)이여 너의 연가(戀歌) 속에 우리들의 대열(隊列)이 굽이쳐 간다.
그러나 아직도 못다 이룬 통일독립(統一獨立)의 여명(黎明) 삼․일(三․一)에 바친 민족의 넋과 기개(氣慨), 또 한번 다시 뭉쳐 금없는 민족의 내일(來日)을 이룩하리니,
위대(偉大)한 민족(民族)의 의지(意志)여 삼월(三月)달 샛바람 속에 그대 힘찬 승리(勝利)의 노래를 교향(交響)하여라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 / 3월의 꿈
3월달이라면 해도 30리쯤 길어져서 게으른 여우가 허전한 시장기 느낄 때다 오 함경도의 산 첩첩준봉에 흰 이빨 드러낸 눈더미 아직 찬바람에 코끝이 시린데 끝없이 흐르는 두만강의 숨소리 너무 가깝다 느릅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멀리 바라보이는 개울가 버들꽃 늘어진 눈물겨움, 마른 풀 사르는 냄새 나는 신작로 길을 홀로 걷고 있는 저분은 누구의 어머님인가 외롭고 어여쁜 걸음걸이 어머님이시여 어머님이시여 햇빛이 희고 정다우니 진달래도 피지 않은 고향산천에 바람에 날리는 봄이 왔나 봐요 봄이 왔어요.
오늘밤 기러기떼는, 동광출판사, 1989
김규동 시인 / 가족
둘은 가버리고 막내가 남았다 너도 이윽고 어디론가 가야 하겠지 빈 책상 서랍을 열었다 닫는다 하늘이 푸르구나 뭘한다고 셋씩이나 낳아 이 고생 하느냐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이제 내 펜대의 사념도 침묵에 싸인다 얘들아 다 크고 나면 그저 이렇게 멋없느나 아직도 내 잔등에 가물거리는 것 너희들이 목마를 타던 고사리 손의 감촉이고나.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검은 날개
1초(秒) 2초(秒)
검은 날개여!
3초(秒) 4초(秒)
무거운 하늘의 회색(灰色) 뚜껑을 열어제끼고 모든 신(神)들은 세기(世紀)의 종말(終末)위에 검은 화환(花環)을 뿌리며 지상(地上)의 희극(喜劇) 앞에 눈을 감는다.
쇠잔(衰殘)한 태양(太陽)처럼 또는 침묵(沈黙)한 해협(海峽)과도 같이.
이윽고 먼 하늘에 상장(喪章)처럼 날리는 오! 화려(華麗)한 그림자여 검은 날개여!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춘수 시인 / 계단 외 4편 (0) | 2019.09.10 |
---|---|
신동엽 시인 / 아사녀(阿斯女) 외 1편 (0) | 2019.09.09 |
김춘수 시인 / 꽃 외 4편 (0) | 2019.09.09 |
신동엽 시인 /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외 2편 (0) | 2019.09.08 |
이장희 시인 / 적은 노래 외 2편 (0) | 201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