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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15.

김규동 시인 /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 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죽음속의 영웅, 근역서재, 1977

 

 


 

 

김규동 시인 / 분단(分斷)

 

 

이슬에 젖은

거울을 숨기고

두 개의 몸짓을 본다

이처럼 다른

두 얼굴이 나타내는 것

어둠의 끝이다

운명의 끝이다

우리 서로 쳐다본 채로 죽는

죽음의 빛이다

상승과 낙하가 하나가 되는

종말의 빛이다

페허에 막이 내리면

뿔이 달린 현실은

캄캄한 심장을 흔들어 놓는데.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 / 불안(不安)의 속도(速度)

 

 

철(凸)렌즈를 쓰고

내가 거리를 간다.

 

활자(活字)처럼 다가와

나의 이마에

나의 가슴에

나의 관절(關節)에

나의 동자(瞳子)안에

정면충돌(正面衝突)하는

중량(重量). 중량(重量). 중량(重量).

 

'절망(絶望)과 공포(恐怖) 아 끝없는 객혈(喀血)이리오'

 

만나면 모두

세균학자(細菌學者)처럼

싸늘한 체온(體溫)을

내 손의 표피(表皮) 위에 남겨 놓던

선수(選手)들을 차라리 피하면서

피하면서 가야 하는

철(凸)렌즈의 운명(運命) 속에

오늘도

태양(太陽)과 하늘만이

해골(骸骨)처럼

해골(骸骨)처럼

그렇게

남아 갔다.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 / 송년(送年)

 

 

기러기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 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도 같이

짓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어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깨끗한 희망, 창작과비평사, 198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