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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규동 시인 / 테레타이프의 가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0.

김규동 시인 / 테레타이프의 가을

 

 

소녀(少女)는 투명(透明)한 유리컵에

한줌의 서정(抒情)을 따라 놓고

거리의 바람 속에

종이조각처럼 사라져 갔다.

 

갑자기 현기증(眩氣症)이 남는 머리를

신문지(新聞紙)에 기대고

오늘의 일과(日課)를 헤아려 볼 때

성냥개비 같은

붓대에 매어달린 나의 가족(家族)들은

오늘의 천기(天氣)에 대하여

테레타이프처럼 시끄러운 불만(不滿)을 배앝기만 한다.

 

먼지 속에

퇴색(褪色)해 가는 나의 책장

떨어진 구두

오늘도 한국의 하늘은 높푸른 애수(哀愁)에 잠기고

파도(波濤) 모양 설레이는

계절(季節)의 소식(消息)은

아득한 먼 날의 비행운(飛行雲)처럼

쓸쓸한 원경(遠景)을 불러 오고 있다.

 

현대의 신화, 위성문화사, 1958

 

 


 

 

김규동 시인 / 통일의 빛살

 

 

하늘 위의 바다

일렁이는 구름밭 헤치고

드높이 솟은 바다

거대한 잔 받들어

하늘을 열고 땅을 열어

오천 년 역사를 이루었나니

백두산이여

천지, 넘치는 생명의 물이여

바람 소리 흐느껴

빛살 온누리에 나부끼고

그윽한 징소리 넘치게 울려퍼져

하나인 숨결 하나인 뜻

찬연히 이었나니

겨레의 맥박인 백두산이여

열두 개의 연봉 병풍처럼 둘러선

그 꼭대기

병사봉 벼랑 밑

삼십 리 둘레에 퍼진 검푸른 물은

송화강 흑룡강

두만강 압록강 끝까지

마를 줄 모르는 젖줄 되어 흐르나니

크도다 장하도다

우리의 산이여

자작나무 이깔나무 우거진 밀림 속

장백산 굽이굽이

겨레의 혼과 입김 면면히 스며

삼라만상 도도히 물결치는

장엄한 노래

백두산은 우리의 힘이고나

맑디맑은 천지물은

자유와 평화의 애틋한 샘이고나

마천령의 힘찬 숨결

남으로 길게 뻗어

함경산맥 개마고원 넘어

태백 차령의 준령 이루고

노령 소백의 큰 기둥

지리산에 닿아

다시 한라로 이어진 오직 하나인 혈맥

삼천리 강토 금 없이 연이은

하나인 땅이여 하늘이여

오, 통일과 만남의 산 백두산

희망과 평화의 바다

백두산 천지

온갖 슬픔 온갖 어둠 사르며

이제 새날이 밝는다

우리 모두 엎드려 큰절 올리나니

이제야말로

이 애절한 그리움과 염원 위에

통일과 행복의 날을 내려주소서

민족의 큰 산 백두산이여.

 

오늘밤 기러기떼는, 동광출판사, 1989

 

 


 

 

김규동 시인 / 포대(砲台)가 있는 풍경(風景)

 

 

바다를 향한

옥상(屋上)의 대공포대(對空砲臺) 위에서

젊은 병사(兵士)는

해양천리(海洋千里) 먼 고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연막(煙幕)처럼

흰구름 밀려가는

여름 하늘 아래를

갈 길을 잃은 짐승 마냥

사람들은 밀려가고 밀려오고,

투명(透明)한 바다의 행렬(行列)에 지친

적은 배들이

오후(午後)의 피곤한 그늘에

그 무엔가 그리움과 같은

기폭을 나부껴 올 때

 

포대(砲臺)를 지키고 선

이국병사(異國兵士)는

소리 없는

리라의 음성(音聲)에

귀 기울여 간다.

 

오! 리라여

한(恨) 많은

1953년(年)의 기류(氣流)는

얼마나 당신이 그리운

계절(季節)이었습니까?

 

바다와 하늘 사이를

신념(信念)처럼 내닫는

검은 포신(砲身).

 

지금

도시(都市)는

괴로운 투영(投影)을 안고

분주(奔走)한 일모(日暮) 속에

침전(沈澱)하여 가고 있다.

 

나비와 광장, 산호장, 1955

 

 


 

김규동 시인(金奎東 1925~2011)

호는 문곡(文谷).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 출생.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수료했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시절 스승 김기림(金起林)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朴寅煥)‧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시작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을 발간했던 1960년 초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포대가 있는 풍경」, 「어느 병상의 연대」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관련 소재,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현실의 비판적 추구 등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은 시집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통일문제, 노사문제, 학생시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는 현실의 문제에 능동적인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 사회파 모더니즘으로의 적극적인 변모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 밤 기러기떼는』(1989), 『느릅나무에게』(2005) 등이 있고, 시선집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흰각시 붓꽃』(1993) 등이 있다. 2011년 시인의 시 432편을 모은 『김규동 시전집』이 창비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작 이외에 평론활동도 꾸준히 계속하여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으며 자전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2011)이 있다. 1960년에 자유문인회협상, 2006년 만해문학상, 2011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