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형수 시인 /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1936. 시인부락. 창간호>
함형수 시인 / 마음의 촛불
밤이 되면 밤마다 나의 마음 속에 켜지는 자그만 촛불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꺼질 듯 나의 외로운 영혼을 비춰 주는 희미한 불빛
그러나 나에게 반드시 깊은 묵상을 가져오고 한없이 먼 나그네길을 가리킵니다.
함형수 시인 / 9월의 시(詩)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9월. 기러기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9월. 구월(九月)의 풍경은 애처러운 한 편의 시(詩). 그 여인은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우다.
함형수 시인 / 교상(橋上)의 소녀(少女)
못견디듯미풍(微風)에하느적거리든실버들가지. 달콤한초조(焦燥)에떨며소녀(少女)는분홍(粉紅)빛양산(陽傘)을쉴새없이돌렸다 그러나다리아래의흐르는물이그급(急)한소년(少年)의걸음보다도쉬지않는것을소녀(少女)는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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