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 시인 /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원제 :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베란다에서
찐득찐득하다 진한 내출혈(內出血)․커피 냄새 밤이 뭉게뭉게 내 입 에서 기어나온다 나의 여백(餘白)이 까아맣게 침몰(沈沒)해 간다 이끼가 번성하는 계절 늪지대(地帶)에는 송장 들의 눅눅한 향연 파충류(爬蟲類)와 동침하는 여인(女人)들의 머리 위 황혼 짙어 가는 스카이 라인에 비둘기떼만 하야니 박혀박혀박혀 가고가고 너도 아닌 나도 아닌 저 검은 그림자는 누구냐! 올빼미의 것처럼 횟가루 벽에 박히는 두 눈 점점 클로즈업 되어 오는 것 이윽고는 점점 멸형(滅形)되어 가는 저것 그 언덕길 오리나무 수우(樹雨) 듣[滴]는 소리 마구 풀냄새도 풍기더니․ 향수(鄕愁)야 네바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에서 기적 소리가 나면 어디론지 떠나야 하는 유령 들이 술렁거린다 가만히 입을 쪽! 맞춰 줄라치면 뽀오얗게 눈을 흘기 면서 `깍쟁이!' 하더니 너는 지금 빈 자리에 너의 투명한 것만 남겨 놓고 녹색(綠色) 의자(椅子)가 앉아 있는 나의 베 란 다 에서 동화(童話)의 주인공이 들어갔 다는 죽음의 돌문을 바라보고 나는 있다 삶의 뒤란에서 죽음들은 하아얀 수의를 입고 놀고는 있다 낙엽이 한 장 고요를 가로 지른 다
자유문학, 1957. 12
조향 시인 / 녹색(綠色)의 지층(地層)
나뭇가지를 간지르고 가는 상냥한 푸른 바람 소리도 들리고. 거기에 섞여드는 소녀의 한숨 소리 계집의 시시덕거리는 소리가소리가소리가. 나는 사람들과 화안한 웃음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무던히는 그립다.
내 머리 위로 지나간 검은 직선(直線) 위엔 짙은 세삐아의 밤이 타악 자빠져 있는데. 그 밑창에 가서 비둘기들은 목을 뽑아 거머테테한 임종(臨終)을 마련하고 있다. 참 많기도 한 세삐아 빛 밤밤밤밤. 밤의 꾸부러진 지평선엔 바아미리온이 곱게 탄다. 그럼. 너는 까아만 밤에만 내 앞에서 피는 하아얀 사보텐 꽃이다. 참 아무도 없는 밤의 저변(底邊)에서. 메키시코의 사막 지대, 너와 나와 사보텐 꽃과. 행복한가? 그럼요!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밑에서 이렇게 당신이 내 곁에 누어 있고. 그럼요! 비쥬! 너는 박꽃처럼 밤을 웃는다.
특호(特號) 활자(活字)를 위하여. 오오. 오오. 디엔․비엔․푸우. 수상(首相)들의 비장(非壯)한 연설. 전파(電波). 파아란 전파(電波)가 지구(地球)에 마구 휘감긴다. 가이가 계기(計器)는 파업한다. 애인(愛人)들은 바닷가에 있다. 엘시노아의 파도 소리. . 끊임 없이 회상(回想)의 시제(時制)가 맴을 도는 여기. 녹색(綠色)의 지층(地層)에서. 화석(化石)이 되어 버린 나는 아아라한 고대(古代)처럼 잠자고 있다. 있어야 한다. 나는 영원을 산다. 개울 물 소리.
자유문학, 195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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