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시인 / 오늘밤 아버지는 퍼렁 이불을 덮고
오늘밤 아버지는 퍼렁 이불을 덮고 노들강 건너편 그 조그만 오막살이 속에 잠자는 네 등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네가 일에 충성된 것을 생각하며 대님을 묶은 길다란 바지가 툭 터지는 줄도 모르고 첩첩이 닫힌 창살문 밖에 밝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두 다리를 쭉 뻗고 있다. 아직도 내가 동무들과 같이 오도바이에 실려 `불'로 `×××'로 끌려다녔을 때 너는 어린 개미처럼 `사시이레'* 보퉁이 끼고 귀를 에이는 바람이 노들강 위를 불어 내리고 있는 집 자식들이 털에 묻혀 스케트 타는 얼음판을 건너 하루같이 영등포에서 서울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나는 네가 착한 아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만일 네가 그것 때문에 조금치라도 일을 게을렀다면은 네가 정성을 다하여 빨아 오는 그 양말짝이나마 어떻게 아버지는 마음 놓고 발에 신을 수 있었겠느냐 벌써 섣달! 동무들과 같이 아버지가 한데 묶여 ×무소로 넘어올 때 그때도 너는 울지 않고 너는 손을 흔들며 자동차를 따라왔다. 그러나 만일 네가 만일 네가 아버지 자식의 사이를 잡아 제친 온 동무들과 우리들 사이를 잡아 제친 이 일을 네가 새로운 사업을 위하여 생각하지 않았다면은 너를 잊어버리지 않고 너를 한껏 사랑하는 아버지는 마음놓고 ×밥을 입에다 넣지를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다. 너는 언제나 일에 충실하고 지금도 또한 충실한 것을 오늘도 그전에 아버지가 건너다니던 노들강 얼음판 위를 영등포에서 용산으로 용산에서 영등포로 아버지는 귀중한 명맥을 버선목 깊이 숨기고 너는 혼자서 탕탕 얼음을 구르며 건넜으리라 그러고 또 밝는 새벽일을 잊지 않고 풋솜같이 깊이 자는 네 등을 두드리며 아버지는 조그만 네 가슴에 손을 얹어 보고 네 가슴이 시계처럼 똑똑히 맥치는 것을 한껏 칭찬한다. 빠르지도 않게 느리지도 않게 언제나 틀림 없지 아버지나 너는 언제나 일에 한결같아야 한다 그것 하나만을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번 폭풍에 짓밟힌 우리들의 사업은 언제 또 어그러질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언제이고 다 우리들이 맘이 한결같으면은 언제나 틀림없이 맥차는 염통이 가슴 속에서 움직이면 우리들 모두 다 가슴에 파묻힌 염통을 괭이로 한목에 푹 파내이기 전에는 아무 때이고 아무 ×에게이고 우리들의 가슴을 만져 보라고 내밀어 보자 무엇이 감히 우리들의 자라는 나무를 뿌리째 뽑을 수가 있겠는가 영리하고 귀여웁고 사랑스러운 아들아 아버지는 요전에도 네 연필로 쓴 편지를 생각하고 네 가슴이 똑똑히 뛰고 있는 것을 칭찬하고 퍼렁 이불 자락을 끄을어 어깨를 덮고 있다 일에 충실한 착한 너를 생각하며
*일본어로 차입(差入)이라는 뜻
제일선, 1933. 3
임화 시인 / 우리들의 전구(戰區) 부제: 용감한 기관구(機關區) 경비대의 영웅들에게 바치는 노래
침입자를 방어하라 저항하거든 대항하라 그래도 들어오거든 생명이 있는 한 싸우라
전선(全線) 노동자는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고 투쟁 사령부는 우리에게 이것을 명령한다
승리냐 그렇지 않으면 패배냐
주림과 박해에 신음하는 남조선 인민의 운명이 걸려 있는 총파업 침략자와 매국노의 도량(跳梁)에 항(抗)하여 일어선 남조선 노동자의 승패를 결(決)하는 이 투쟁
우리는 실로 참을 수 없는 모욕에 대한 긴 인내와 야만스런 박해에 대한 오랜 수난 끝에 일어선 것이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철도로 하여금 자유의 나라의 대동맥이 되게 하기 위하여 일제의 악한들이 남기고 간 파괴의 흔적과 영영(營營)히 싸우고 있을 때 인민의 원수들은 이 철도로 재빨리 친일파와 반역자를 실어다가 인민의 자유를 파괴할 온갖 밀의(密議)를 여는 데 분주하였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철도로 하여금 새로운 공화국에 문화와 과학을 실어 올 대로(大路)가 되게 하기 위하여 밤과 낮을 헤아리지 않고 근면하였을 때 인민의 원수들은 이 철도로 썩어 빠진 전제주의와 파시즘의 독소를 실어다가 평화로운 조국에 내란의 씨를 뿌리려고 음모하였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철도로 하여금 신생하는 조국의 부(富)가 집산(集散)하는 운하가 되게 하기 위하여 형언할 수 없는 기아의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 인민의 원수들은 외방 물자와 호열자를 실어다가 고난한 동포 가운데 가난과 불행을 펼쳐 놓았다.
아아 인민의 영구한 원수들아 드디어 우리들이 사랑하는 철도는 온전히 조국의 새로운 불행과 동포에게 거듭하는 노예화를 위하여 움직이었고 우리들에겐 다시금 헤어날 수 없는 기아와 벗어날 수 없는 철쇄가 너희들이 사육한 저 폭력단의 야수들과 함께 이빨을 갈며 달려들었다
죽음이냐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냐
물러설 길 없는 투쟁의 막다른 길 위 붉은 별 빛나는 철도노동조합의 깃발은 어느새 기관차(機關車)에 나부끼고 1946년 9월 24일 오전 0시 쩨네․스트로 들어가라 준엄한 지령 제일호(第一號)는 벌써 전선(全線)에 내리었다
사랑하는 전우여 여기는 기관구(機關區)의 경비선(警備線) 남조선 철도파업 투쟁사령부가 있는 곳 전선(全線) 철도노동자의 온갖 명예가 걸려 있는 아아 적과 더불어 싸워서 죽을 영광이 가는 곳마다 흩어져 있는 우리들의 전구(戰區)여 침입하는 모든 적에게 잔인한 운명을 선사하고 발자욱마다를 야수들의 피의 또랑을 만들자
기관구(機關區)는 우리들의 불멸한 성곽이리라.
찬가, 백양당,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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