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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인 / 훔쳐가는 노래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주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 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있었다
계간 『문예중앙』 2010년 가을호 발표
진은영 시인 / 이 모든 것
비눗방울 하나가 투명한 기쁨으로 무한히 부풀어 오를 것 같다 장미색 궁전이 있는 도시로 널 데려 갈 수 있을 것 같다 겨울과 저녁 사이 밤색 털 달린 어지러운 입맞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광활한 사랑의 벨벳으로 모든 걸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인 것 같다 배고픈 갈매기가 하늘의 마른 젖꼭지를 심하게 빨아대는 통에 물 위로 흰 이빨 자국이 날아가는 것 같다
이 도시는 똑같은 문장 하나를 영원히 받아쓰는 아이와 같다 판잣집이 젖니처럼 빠지고 붉은 달 위로 던져졌다 피와 검댕으로 얼룩진 술병이 흰 비탈에서 굴러온다 첫 시집의 변치 않는 한 줄을 마지막 시집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청춘은 글쎄…… 가버린 것 같다 수천 개의 회색 종을 달고서 부드러운 노란 날개 하나 천천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가난한 이의 목구멍에 황금이 손을 넣어 모든 걸 토하게 하는 것 같다 초록빛 묽은 토사물 속에 구르는 별들 하느님은 가짜 교통사고 환자인 것 같다 천사들이 처방해준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은 것 같다 푸른 캡슐을 쪼개어 알갱이를 다 쏟아버리는 것 같다 안녕, 안녕, 슬레이트 지붕의 부서진 회색 위로 눈이 내린다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이 거짓말인 것 같다 달에 매달린 은빛 박쥐들의 날개가 찢어져 내리는 것 같다
계간 『문학과 사회』 200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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