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 삼수갑산(三水甲山)
차(次)안서선생(岸曙先生)삼수갑산(三水甲山)운(韻)
삼수 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불귀(不歸)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신인문학, 1929. 11
김소월 시인 / 상쾌한 아침
무연한 벌 위에 들어다 놓은 듯한 이 집 또는 밤새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지 못할 이 비. 친개지(親開地)에도 봄은 와서 가냘픈 빗줄은 뚝가의 어슴푸레한 개버들 어린 엄도 축이고, 난벌에 파릇한 뉘 집 파밭에도 뿌린다. 뒷 가시나무밭에 깃들인 까치떼 좋아 지껄이고 개굴가에서 오리와 닭이 마주 앉아 깃을 다듬는다. 무연한 이 벌 심어서 자라는 꽃도 없고 메꽃도 없고 이 비에 장차 이름 모를 들꽃이나 필는지? 장쾌한 바닷물결, 또는 구릉의 미묘한 기복도 없이 다만 되는 대로 되고 있는 대로 있는 무연한 벌! 그러나 나는 내버리지 않는다. 이 땅이 지금 쓸쓸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금, 시원한 빗발이 얼굴에 칠 때, 예서뿐 있을 앞날의 많은 변전의 후에 이 땅이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워질 것을! 아름다워질 것을!
삼천리, 1934. 11
김소월 시인 / 새벽
낙엽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프러이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 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 질러 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에 지새일 때.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생(生)과 사(死)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 그럴듯도 한 일을, 하필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서울 밤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널따란 거리면 푸른 전등. 막다른 골목이면 붉은 전등. 전등은 반짝입니다. 전등은 그물입니다. 전등은 또다시 어스렷합니다. 전등은 죽은 듯한 긴 밤을 지킵니다.
나의 가슴의 속 모를 곳의 어둡고 밝은 그 속에서도 붉은 전등이 흐득여 웁니다. 푸른 전등이 흐득여 웁니다.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머나먼 밤하늘은 새카맙니다. 머나먼 밤하늘은 새카맙니다. 서울 거리가 좋다고 해요, 서울 밤이 좋다고 해요.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나의 가슴의 속모를 곳의 푸른 전등은 고적합니다. 붉은 전등은 고적합니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실제(失題)
이 가람과 저 가람이 모두 쳐 흘러 그 무엇을 뜻하는고?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죽은 듯이 어두운 깊은 골의 꺼림칙한 괴로운 몹쓸 꿈의 퍼르죽죽한 불길은 흐르지만 더듬기에 지치운 두 손길은 불어 가는 바람에 식히셔요 밝고 호젓한 보름달이 새벽의 흔들리는 풀노래로 수줍음에 추움에 숨을 듯이 떨고 있는 물 밑은 여기외다.
미더움을 모르는 당신의 맘
저 산과 이 산이 마주서서 그 무엇을 뜻하는고?
진달래꽃, 매문사,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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