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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억 시인 / 우정(友情)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15.

김억 시인 / 우정(友情)

 

 

사랑은 저문 봄날의 꽃보다도 가이 없고,

우정(友情)은 술잔에서 술잔으로 떠돌아가며

거짓의 울음과 값없는 웃음을 흘리다가는

어리운 담뱃내보다도 더 쉽게 스러지나니,

다음에 남는 설움이야 한(限)이나 있으랴.

 

사람아, 기운(氣運)있게 인생(人生)의 길을 밟는 우리의

맘과 맘과는 한번(番)조차 맞은 적이 없어라,

그러면, 늦은 봄날의 꽃도 지는 이 저녁에

나는 떠돌아가는 술잔을 입에 대이고

우정(友情) 가득한 그대의 얼굴을 혼자 보며 웃노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원산(元山)서

 

 

하이얀 흰 돛대는

넓은 바다 동해(東海)의

저 먼 곳에 떠돌고,

 

하이얀 흰 구름은

가없는 넓은 하늘

방향(方向) 없이 헤맬 제,

 

바닷가 모래밭 위

푸른 양산(陽傘) 아래선

누구를 기다릴까,

젊은 아씨 혼자서.

 

안서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29

 

 


 

 

김억 시인 / 읽어지는 기억(記憶)

 

 

고요한 밤의, 고요히 쉬는 바다 위에

반듯거리는 별의 희미한 빛과도 같이,

아름다운 여름의 온갖 빛을 다 잃은

있을 듯 말 듯한 향(香)내를 놓는 꽃의 맘이여.

 

뒤설레는 바람의 하룻밤을 시달린

명일(明日)이면 말라 없어질, 생각의 꽃의

떨면서 헤치는 적은 향(香)내를

곱게도 맡으며, 바리운 맘이여, 사랑하여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 시인 / 입

 

 

온갖의 화병(禍病)은 입으로 들어가고,

온갖의 화복(禍福)은 입에서 생겨라,

그러하다, 나의 이 입으로 읊어진 노래는

세기(世紀) 끝에 생기는 Malady(멜라디)의 쓰린 신음(呻吟),

사랑의 사체(死體)를 파묻는 야릇한 숨소리러라.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주식회사, 1923

 

 


 

김억(金億) 시인 [1893.11.30~?]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시인. 주요저서 : 《오뇌의 무도》 《해파리의 노래》 《꽃다발》 《망우초》 호: 안서(岸曙). 본명: 희권(熙權). 평북 정주(定州) 출생. 오산중학(五山中學)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를 중퇴하였다. 모교인 오산중학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동아일보》와 경성방송국에서도 근무하였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평의원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을 하였다.

8 ·15광복 후에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가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20세 때인 1912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투르게네프 ·베를렌 ·구르몽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하여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낳게 하는 촉매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원정(園丁)》 《신월(新月)》 등을 번역하였고, 그 밖에 A.시몬즈 시집 《잃어버린 진주》와 한시의 번역 시집인 《꽃다발》 《망우초》 《중국 여류시선》 등이 있다. 1923년에 간행된 그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서 인생과 자연을 7 ·4조, 4 ·4조 등의 민요조(民謠調)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선구적 연구가로서 1920년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상설 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에스페란토 단기 강좌》(1932)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이다. 그는 특히 오산학교에서 김소월(金素月)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