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숙 시인 / 모과를 놓다
모과가 모과나무에 달리는 것은 모과의 뜻이 아니에요
오렌지처럼 밝게 자라고 싶어서 수시로 거울을 보느라 패인 눈자위
소리 없이 기어드는 발 없는 것들 때문에 손톱을 기르고 모과가 모과로 살기로 결심하면 모과에게서는 모과향이 나기 시작해요
벼랑 앞에서 환청이 들리는 듯 자주 뒤를 돌아보고 한 곳을 오래 바라보던 죽은 고모처럼 얼굴이 울퉁불퉁해진,
형체가 반 넘게 괴사한 모과가 거의 빠져나간 모과를 주웠어요 모과를 떠나지 않는 모과의 결심이 다음 모과에게로, 또 그 다음 모과에게로
모과나무 아래서 모과의 바퀴를 제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았어요
격월간 『시사사』 2019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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