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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성금숙 시인 / 모과를 놓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16.

성금숙 시인 / 모과를 놓다

 

 

모과가 모과나무에 달리는 것은

모과의 뜻이 아니에요

 

오렌지처럼 밝게 자라고 싶어서

수시로 거울을 보느라 패인 눈자위

 

소리 없이 기어드는

발 없는 것들 때문에 손톱을 기르고

모과가 모과로 살기로 결심하면

모과에게서는 모과향이 나기 시작해요

 

벼랑 앞에서 환청이 들리는 듯

자주 뒤를 돌아보고

한 곳을 오래 바라보던

죽은 고모처럼 얼굴이 울퉁불퉁해진,

 

형체가 반 넘게 괴사한

모과가 거의 빠져나간 모과를 주웠어요

모과를 떠나지 않는 모과의 결심이

다음 모과에게로, 또

그 다음 모과에게로

 

모과나무 아래서 모과의 바퀴를

제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았어요

 

격월간 『시사사』 2019년 1~2월호 발표

 

 


 

성금숙 시인

충남 부여에서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2017년 제2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 수상.  2017년 계간《시산맥》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