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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시인 / 백우(白雨)
비를 피해 우린 고래 등 위에 서있었다 그가 항상 고래 등 같은 집을 꿈꾸었기에 고래 등 위에 서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긴 벤치같이 누운 고래 등 손수건만한 차양으로는 옷이 홀딱 젖는 고래 등
고래 등 같은 집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추웠다 한 겹의 뽀얀 스크린으로 호수가 갈라지고 숲이 나눠졌다 나는 고래 등 때문에 쪼개지고 싶지 않았기에 자주 발꿈치를 들어 그에게 키를 맞췄다
빗물보다 차가워진 몸은 옛 시간을 퍼즐처럼 조각냈다 그의 목소리가 등을 콩콩 울리며 내 쇄골까지 흔들 때 호수 건너편은 점점 더 흐려지고 수면 위에 떨어지는 약속들로 호수는 더욱 뿌예졌다 저 너머가 분명하지 않아서 비는 계속 오고 흠뻑 젖은 들판을 가린 그의 뒷등이 아직 따뜻해서 좋았다
바람이 호수를 마분지처럼 휘었다가 폈다 구겨진 자리가 한꺼번에 펴질 때 고래 등엔 마루 같은 골이 패였다 우리는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따뜻한 방은 서로 달랐다
가슴 골짜기로 파고드는 빗방울 때문에 자꾸 눈이 내려감겼고 등이 휘어지는 고래 위에서 퉁퉁 불어가는 벤치의 나뭇결이 고래울음으로 우는 소리를 들었다
계간 『시산맥』 2016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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