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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호일 시인 / 인어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6.

최호일 시인 / 인어

 

 

그것은 사람과 새 사이에 있다 아니면 모과나무나 토마토 사이에 무릎을 안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담장위에 떨어진 털은 하얀 바람의 색 같은 것이기도 한데 가끔 구름은 허리를 구부려 비의 형식을 빌려 말한다

 

비는 누구의 것인가 나무는 옷을 입을 때 중간 정도의 소리를 내지만 바람은 소리가 없다 이런 현상을 바닷가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말한다 파도가 심한 날에 배를 타고 바다의 한가운데에 흔들리고 있을 때 따뜻한 커피와 음악을 연관짓는 것은 특히 쉬운 일이다

 

그리고 누가 올까 인어가 온다 흔들리는 것은 배가 아니라 바다다 바람의 피부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런 생각들을 노란색 종이에 적어두고 많은 연락선이 오고 가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인어를 만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금빛 머리카락처럼 노랫소리가 들리고 몸에서 한 가닥씩 가늘게 빠져 나갈 때

 

계간 『시인시대』 2018년 여름호 발표

 

 


 

최호일 시인

충남 서천에서 출생. 2009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바나나의 웃음』(문예중앙, 2014)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