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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선호 시인 / 친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8.

김선호 시인 / 친견

 

 

몸속 법당 가는 길이라 쓰여 진

팻말을 따라 몸속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부처님은커녕

연꽃 좌대나 나한상은 보이 고

동맥과 정맥만이 애를 쓰고 있다

몰락한 절터에서 기왓장을 줍듯

몸 깊은 곳을 더듬거릴 때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피톨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며

움직이는 소리였다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을

분명히 아는 이가 뒤엉킨 길에서

자리를 정리 하는 소리였다

복잡하게 얽힌 길을 지나

법당을 빠져 나오려 할 때

아,

염주 알을 굴리는 부처님을 보았다

심장에서 붉어진 마음들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집 『오래된 책장』(천년의시작, 2016) 중에서

 

 


 

 

김선호 시인 / 오래된 책장

 

 

쥐에 갉아 먹힌 종이같다

울퉁불퉁한 노면에

거미줄이 늘어져있고

쌓인 나뭇잎은 거무스름하게 퇴색되고 있다

 

선조들이 책 봇짐을 지고

수없이 걸어 만든 산길

새와 구름도 수많은 글귀를 흘려보냈다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는데

돌멩이 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넘긴 문장으로

발길에 자꾸만 밟힌다

할아버지 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돌.

전해 내려오는 고서로 닳아 있다

신작로가 만든 속도로 지워지는 풍경 속에서

남기고간 발자국을 탁본으로 새기느라

굴러다닌 탓이다

 

계룡산 굽이길

할아버지의 책장 속에서 꺼내

내용은 모르고 겉만 훑던 책처럼

굽이진 채 접혀져 있다

 

시집 『오래된 책장』(천년의시작, 2016) 중에서

 

 


 

김선호 시인

충남 공주에서 출생. 국민대학 대학원 졸업. 2001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몸 속에 시계를 달다』와 『햇살 마름질』, 『오래된 책장』이 있음. 200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2010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 2008년 푸른시학상 수상. 2012년 제3회 김춘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