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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서해 노을의 붉은 입술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8.

김백겸 시인 / 서해 노을의 붉은 입술

 

 

  붉은 해가 붉은 그림자를 서해 비다에 드리운다

  마야(maya)의 강을 걸어온 운수납자(雲水納子)는 해인(海印)을 보고 기쁨에 잠긴다

  양귀비 술을 먹은 관세음(觀世音)의 눈빛같아라

  저녁의 검은 눈썹아래 미묘한 슬픔

 

  붉은 해의 붉은 입술이여

  루즈를 바른 붉은 입술이여

  유성 한국관 나이트 불빛아래서 웃던 붉은 입술이여

  캄캄한 노안의 인생에 루즈 자국을 남겨 과거를 유혹하는 붉은 입술이여

  바람 부는 날 치마가 올라간 순간의 사진 속에서 영생한 마를린 몬로의 입술이여

  그 입술을 보며 방랑자는 방랑이전의 삶이 바빌론의 음부(淫婦)의 웃음 속에 있음을 본다

 

  성지순례를 떠난 지인이 보낸 카톡 사진 속의 마케루스는 험하고 황량하다

  머리가 잘린 세레요한의 붉은 피는 흔적도 없다

  헤롯왕 인디바의 형수를 향한 욕정과 이를 비난한 요한의 혀와 펨므파탈 살로메의 춤도 모두 먼지가 되어 있다

  흐르는 생각의 피를 받아 부활한 헤롯궁전의 그날 밤 연회는 붉은 양탄자의 음악과 춤으로 화려하구나

 

  시간은 가을의 쑥부쟁이처럼 쓰러졌다가 새 봄의 홍매로 다시 피어난다

  구미호처럼 몸을 뒤집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가면을 또 보여준다

  육체가 무덤에서 썩은 후에도 디지탈의 기호자궁에서 미이라처럼 환생한 붉은 입술이여

  구글 영상자료 속에서 환상의 혀를 내밀어 인간의 뇌에 키스하고 있는 붉은 입술이여

  여우의 붉은 입술이 서해 바다에 빠져 장엄한 노을이여

 

  마야(maya) 강을 따라 금강하구에 이른 자는 바다의 부표(浮標)와 마주한다

 

웹진 『시인광장』 2017년 5월호 발표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기호의 고고학』과 시론집  시론집 『시적 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光源)』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主幹 역임. 현재 〈시힘〉,〈화요문학〉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