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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정미 시인 / 고흐의 휴식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9.

김정미 시인 / 고흐의 휴식

 

 

  가만가만 정오의 등을 고양이처럼 쓸어줘야겠다

  팔베개한 헝겊 인형의 생각을

  달력 난간에 누운 누드의 슬픔을

 

  너는 모른다

  귀 없이 세상 귓속말을 피리로 불던 바람의 큰 귀를

  정오의 정수리에 햇살을 옮겨 심던 삽 한 자루를

  절망을 베던 칼날의 푸른 절규를

  세상에 떨어진 적멸의 붉은 손목 하나를

 

  너는 그래,

  절망은 네 온몸의 노란 혼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먼저 측량한 것은

  밀밭에 누운 고흐의 노란우울이었다는 것을

  구름이 흘린 눈물은 쓸쓸함의 총질량이었다는 것을

  정오의 휴식*은 도마뱀보다 꼬리가 한 뼘 짧다는 것을

 

  너는 모를 것이다

  밀밭으로 날아온 햇살이 날개 터는 소리를

  종일 해바라기처럼 눈 뜬 불면의 노란 밤을

  계절과 계절 사이를 뒤척이는 바람이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누군가 내 꿈 쓸어 준 적 없어

  햇살 이불 덮고 계절로 물들어 본 적 없어

  맨발인 내 시침과 분침은

  세상에 납작 엎드려 내 삶을 탁발 중이다

 

*정오의 휴식: 고흐가 밀레의 동일 제목 그림을 재해석 해 그린 그림

 

월간 『시와 표현』 2017년 4월호 발표

 

 


 

김정미 시인

2009년《계간수필》을 통해 등단. 2015년 《시와 소금》 신인상.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