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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림 시인 / 지우개가 따라 오지 못하도록 웅덩이를 만들었다
첫줄의 내가 없어졌다
첫줄의 내가 돌아갔다 생각하고 오랫동안 그 길도 잊어 버렸다 내가 쓸려간 흔적만 도깨비처럼 뒹굴었다 어떤 이야기도 회색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으로 번지 없는 해안은 생겨나고 없어져 버렸다
첫줄의 내가 지워졌다 계속 따라오는 지우개를 피해 샛길을 달렸다
창밖으로 밀어낸 감정은 죽었나 깨어진 구름은 흩어지지 않고 사슴이 되나 횟집이 되었나
사마귀가 죽어가며 뒷다리를 흔드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울었다
지우개가 끈질기게 따라오는 새벽 나는 어디에서 손바닥을 비비며 재생을 공부하였다 나무들이 계절과 맞서는 터널로 달렸다
천천히 사라지는 앞발을 모으고 그 이상한 첫줄의 피와 시끄러운 냄새가 눌러 붙은 극지
신발을 신는 사이 마지막이 굴러가버리면 어쩌나
창을 밀면 유적과 우는 여우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탈출해탈출해 담장을 넘는 장미를 보았다
내가 나의 오염된 발바닥을 지울 수 있나 또 한 장의 내가 허옇게 흔들렸다
계간 『시와 사상』 2016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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