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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인 시인 / 오브제를 사랑한 -매혹을 소묘하다
바람을 지운다 소리를 지운다 창을 설핏 열어 빛을 소환한다 하오의 잔광이다 동쪽문은 유리의 켄버스 물의 입자들이 캔버스 위에서 응결되는 중이고 보얗게 채색되는 중이고 무거워진 몇 개 물방울들 중력 쪽으로 가파르게 하강하며 긴 발자국을 남긴다 물의 족적, 물의 붓질 켄버스 위 몇 개의 길고 투명한 금줄들은 스크레치 기법일 것이다 샤워실에선 더 촘촘해진 김, 아지랑이
시계소리는 화면 밖에서 뚝딱이게 두어라 소녀가 물에서 오고 있으니
젖은 살내, 〈타올을 든 소녀〉*쪽으로 쏠리는 펄럭이는 후각들 팔 하나가 불쑥 액자 속으로 들어가 몸을 반쯤 가린 무명 타올을 벗겨내며 빛을 조금 더 불러 앉힌다 전라(全裸)의 소녀 어디선가 휘리릭~ 날아오는 입파람 소리들
아니다 역시 설렘은 은밀하고 순연해야.. 과한 것은 금기, 팔에 걸치고 있던 무명 타올을 그녀에게 돌려 준다 무채색으로 일어서는 ‘타울을 든 소녀’ 아직 더운 김 날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독과 허무의 잿빛, 권옥연의 잿빛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시다 제 본성의 색감으로 소녀를 감고 도는 추상의 오브제들도 빛난다 움직이는 수증기며 시계소리 그리고 유리를 달리는 물의 발자국들이 세상의 덧칠된 시간을 지우며 존재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절대 미감(美感)의 영속성에 대하여
*권옥연 화백의 유화
웹진 『시인동네』 2017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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