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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연 시인 / 어떤 거리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8.

허연 시인 / 어떤 거리

 

 

서쪽으로 더 가면

한때 직박구리가 집을 지었던 느티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칠년 째 죽어있는데

칠년 째 그늘을 만든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내지 않는다

나무는 거리와 닮았으니까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보통은 별이 떠야 알 수 있지만

강 하구에 찍힌

어제 북쪽으로 떠난 철새의 발자국이

그걸 알려 줄때도 있다

마을도 돌고 있는 것이다

 

차에 시동을 끄고 자판기 앞에 서면

살고 싶어진다

뷰포인트가 없어서

나는 이 거리에서 흐뭇해지고

또 누군가를 기다린다

 

단팥빵을 잘 만드는 빵집과

소보로를 잘 만드는 빵집은 싸우지 않는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커다란 진자의 반경 안에 있는 듯한

안도감을 주는 거리.

 

이 거리에서 이런저런 생들은

지구의 가장자리로 이미 충분하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9년 5~6월호 발표

 

 


 

허연 시인

1966년 서울에서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1995),『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 『오십 미터』(문학과지성사, 2016) 등과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해냄, 2008)가 있음.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 한국출판학술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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