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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철 시인 / 산화(散化)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8.

김명철 시인 / 산화(散化)

 

 

너무 일찍 떠난 당신을 생각하면서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작나무 아래

 

파헤쳐진 몸통을 가까스로 매달고 있는 산비둘기의 암갈색 머리

그 짧은 깃털에 박힌 햇살이 나의 눈길을 묶습니다

生들의 격렬한 의지에 온 산이 마음을 졸였을 것입니다

 

散散이 흩어지고 있는 몸통에서 바람이 일어

오래전 태어나면서부터의 기억과 그 이전의 멀고 먼 오래전의 기억들이 먼지가 되어 흩날립니다

흩어져 날린다는 건

더 이상 묶이지 않겠다는 것이겠지만

 

나무의 뿌리가 새의 부리를 감싸 어둠 속으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풀린 내 마음이 암흑물질처럼 부유하고 있습니다

 

부리와 뿌리가 만든 나무의 날개가 당신이 떠난 쪽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지난봄의 햇살과 내년 봄의 햇살과 사천 년 전 미라를 만들던 봄의 햇살이 아무런 의지도 없이

태초의 어둠처럼 내 몸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계간 『시와 문화』 2019년 여름호 발표

 

 


 

김명철 시인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서울대학교 독문과,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문학박사) 졸업. 시집으로『짧게, 카운터펀치』(창비)와 『바람의 기원』(실천문학)이 있음.  2007년,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12년 '천태산은행나무문학상' 대상. 2018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선정. 현재 <경기신문> '아침시산책' 필진,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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