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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민 시인 / 계단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9.

안민 시인 / 계단

ㅡ 어둠과 허공과 흐림과 침묵과 알지 못할 그 모든 것의 亂場

 

 

1

허공 혹은 천 길 나락으로의 주둥이:

18세기 부하라의 죄수들, 자루에 담겨 46m 칼란미나렛 첨탑에서 뉴턴의 사과처럼 만유인력을 간증했음. 그때 계단은 캄캄했고 귀를 콱 틀어막았을 것임.

 

2

형이상학:

계단에 주저앉아 울어 본 적 없는 동물과는 절대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아버지 유언임.

 

3

형이하학:

처녀 유부녀 창녀를 가리지 않고 아래쪽 내면의 美를 감상.

 

4

黙秘:

아침 여섯 시, 김칠수 씨 볼일을 보고는 재래식 화장실 0.5m 높이 계단을 헛디디며 최후의 비명을 연주함. 두 시간 후, 妻가 변형된 비창을 작곡할 때까지도 계단은 침묵으로 일관.

(김칠수 씨 처는 등산길 가파른 돌계단 끝에서 만유인력에 대해 학습했을 개연성이 큼)

 

5

벽:

김칠수 씨 음악 관련, 그의 처는 계단을 강조하고 近族은 처의 귀와 입에 짙은 혐의를 둠. 자식들 눈동자는 여전히 안개처럼 혼미.

 

6

깃발:

때로는 아무도 몰래 미친 듯 펄럭이기도 함.

 

7

유령:

초고층아파트나 빌딩에 놓인 계단은 고독에 몸서리치며 귀신처럼 괴이한 울음을 흘림. 흐린 날이면 더욱 정도가 심해짐.

 

8

친절한 금자씨:

계단 끝에 걸린

그림자,

계단이 바람을 불러들여 순식간에 등을 떠밀어 버리기도 함.

 

9

신앙:

누군가는 제 몸을 계단에 접는 것도 부족해 무슬림처럼 바닥에 이마를 붙인 후 종일 기도를 함. 동전소리가 들릴 때 간혹 이마를 떼기도 함. 그는 계단을 통해 우주를 읽고 밥을 얻고 밤이면 계단을 덮고 잠을 청함.

 

10

몸의 내부:

내 몸 속에도 계단이 존재.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 있음. 술 취한 아버지 발이 심장 근처까지 올라와 비틀거리거나 여자가 허리 아래로 내려가다 실족키도 함. 계단을 사랑하는 새들이 새벽까지 내 몸을 흔들기도 함. 그래도 나는 위만 보고 상승 중. 몸은 생장을 멈췄지만 계단은 자라기 때문일 것임. 나는 계단에 중독되어 나무계단처럼 자주 삐걱거림.

 

 


 

안민 시인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부산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게헨나』(현대시, 2018)와 『아난타』(모든시, 2019)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