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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필 시인 / 꽃가루주의보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9.

이필 시인 / 꽃가루주의보

 

 

오월의 무덤이 웃음을 뿜어낼 때마다

아카시아꽃이 피어난다

그늘 아래 지나는 소녀들,

 

송곳니 품은 이파리가 흰 목덜미 물고

공중에서 어찔어찔 뜯겨 나간다

 

가시에 맺힌 햇덩이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챈 꽃은 뜨거워진다 파르르

바람이 스치면 진저리 치듯 검은 수액이

우듬지 속잎까지 달아오른다

 

어른이 되지 못한 여린 것들

새 꽃잎을 뜯다 스러진다, 감염처럼

떠나간 행적이 격리된다

 

햇볕 농도 높을 때 꽃잎의 낙하율은 커지고

불행은 뿌리의 전생을 더듬는다 누군가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시선을 떨굴 때

흘러내리는 그늘 속에는 한때의

비명과 열망이 봉인되어 있다

 

짙은 꽃가루가 날리면

갓 핀 죽음이 향기에 찔린다

 

 


 

이필 시인

2016년 월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