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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시인 / 거미줄
거미가 몸에서 뽑은 지식으로 검은 글자의 책을 만들어 거미집을 세웠습니다 거미 책 속에서 나는 마야영화에 출연한 아바타였습니다 거미 책 속에서 시나리오의 각본대로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었습니다 거미 책 속에서 삶과 죽음과 천국과 지옥이 집을 지었다가 무너졌습니다 거미 책 속에서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생이 늙어갔습니디 거미 책 속에서 나는 수혈을 기다리며 영생을 꿈꾸는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자였습니디
나는 관계의 그물위에서 웃는 거미 여덟 개의 다리와 항문의 거미줄로 문화와 지식의 광장을 걸어가는 거미 내 안의 여왕거미와 함께 거미줄 감옥에서 사는 거미 학교를 가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서 거미새끼를 두 마리나 낳은 거미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가상세계를 뇌가 아프도록 걸어 다니는 거미 은행과 병원과 이마트를 거쳐 베드타운인 아파트로 돌아오는 거미 나는 뇌 안의 모든 지식을 황금으로 바꾸고자 하는 욕망의 거미
거미집이 물고기를 디자인했습니다 거미집이 양서류와 파충류를 디자인했습니다 거미집이 인간을 다자인해서 알타미라 벽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거미집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와 황하에 사는 인간들이 도시와 신전을 세우게 했습니다 거미집이 석가와 예수와 마호메트의 뇌를 크게 해서 종교적 환상을 퍼뜨리게 했습니다 거미집이 새로운 지성체인 컴퓨터로봇들을 디자인해서 세상에 대한 권능을 주었습니다 거미집이 직조하는 영원회귀의 입체영화는 스토리의 결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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