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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선희 시인 / 사랑, 십 분 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9.

장선희 시인 / 사랑, 십 분 전

 

 

  ‘카페는 이층입니다’ 안내판 걸개가 된 이젤

  이젤의 노란 바탕이 해바라기밭 같다

  난 돌아오던 지오반나처럼 계단을 오른다 해바라기밭,

  오래된 나무 계단이 저음을 낸다

  육중한 콘트라베이스, 마지막 음색을 자랑한 건 언제였을까

  톱니바퀴 줄감개가 입을 막고 있다

  피치카토 주법, 나만 듣는 것일까

  램프 아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들의 농가는 어둡다

  난, 손가락으로 쓴다

  커피를 악마의 입술이라 일컫던 ‘Baudelaire’

  보르드 슈 페리어를 난, 보. 들. 레. 르 라 부르기로 한다

  ‘이봐요, 웨이터’

  창밖은, 한 치 여백 없이 검은색이 점령했다

 

  주머니를 뒤집는다

  휘발된 사랑의 맹세처럼,

  색을 잃어버린 유리잔,

  그 투명을 따라 금이 번진다

  죽은 새떼의 몸통을 질겅 밟으며 걸어가는 코발트청 여인.

  바다는 여인의 입수(入水)를 거부한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다

  여인은 물속으로 사라질 듯, 그러나 남자는 여인의 수장(水漿)을 원치 않는다

  마흔 일곱의 남자는 안다 여인을 구하는 순간 사랑을 얻게 되리란 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진공관 앰프에서 흐른다

  피어나는 나무들, 빛화살이 태양을 가리고

  선홍빛 피가 터져나온다

  마침내 벽면의 두 남녀, 걸어나오는데…….

  그들은 청년 샤갈과 그의 연인 벨라

  비데스부르크는 온통 초록 마술에 빠져있다

  대지도 집도 나무도.

  눈을 감는다

  행복이 차오르면, 공중부양 되는 걸까

  주문을 걸자

  카페는 바다가 된다

 

 


 

장선희 시인

1964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2년 제1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제5회 월명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