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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두현 시인 /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9.

고두현 시인 /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 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고두현(高斗鉉) 시인

1963년 경상남도(慶尙南道) 남해(南海)출생.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중앙일보(中央日報)』신춘문예에 시「유배시첩(流配詩帖)」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늦게 온 소포』『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으며, 2005년 제10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했다. 1988년부터『한국경제신문(韓國經濟新聞)』기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문화부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