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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용목 시인 / 젖은 옷을 입고 다녔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9.

신용목 시인 / 젖은 옷을 입고 다녔다

 

 

  자고 나면 자리에 물이 흥건했다 매번  꿈속에서 아버지를 쏟았다

  차라리 깨질 것이지, 들여다보면  어느새 가득 차 있는 물동이

 

  물동이를 이고 다닐 순 없었다 아버지는 집에 있어야 했다

  젖은 옷이 내내 달라붙었다

 

  나무들은 또 자라 빨래처럼 비를 맞았다 물동이에 대고 꽉짜,

  아랫목에 널어주고 싶었다

  자고 나면 엎질러져 있는 물동이 차라리 마시고 싶었다

  내장 속의 아버지 소화되는 아버지 배설되는 아버지

  돌아서면 웅웅 귓전에 바람소리

 

  우는 것들은 속이 비어 있다, 파이프를 돌리면 나는 소리

  누가 아버지를 잡고 빙빙 돌리는 모양이었다

 

  매번 아침은 법정처럼 서 미리 써둔  판결문을 읽어내렸다

  아버지 아버지 물동이에 머리를 박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 한 나무의 잎들은 모두 같은 빛깔이며

  왜 한 나무의 가지는 모두 다른 방향인지

 

  자고 나면, 젖은 옷을 입은 꿈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신용목(愼鏞穆) 시인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0년『작가세계』 신인상에 시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와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으며, 희곡작품으로 노숙자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나비눈』(2006년 1월 아르코예술극장 상연)이 있다. 그 외의 연구서로『다시 읽는 김수영』(공저) 등이 있다. 권의 시집은 시대의 외곽에 대한 감각적 사유와 탁월한 언어구사력이 결합한 보기 드문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고, 희곡작품은 소외된 자의 삶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빼어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내일을 여는 젊은 예술가 지원’을 받았으며, 두 차례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을 받았다.『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2004년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고,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는 2007년도 올해의 최우수시집에 뽑혔다. 또한 이 시집으로 2008년,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시집에 수여하는 제2회 시작문학상 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