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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 / 실려가는 나무
풀어헤친 머리가 땅에 닿을락 말락 한다 또다른 생(生)에 이식되기 위해 실려가는 나무, 트럭이 흔들릴 때마다 입술을 달싹여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다 언어의 도끼가 조금은 들어간 얼굴이다 오래 서 있던 몸에서는 자꾸만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걸 받아 적으며 따라가다가 출근길을 놓치고 길가에 부려진 나는 나무 심는 인부의 뒷모습을 보았을 뿐이지만, 나무 모르게 그 나무를 따라간 것은 덜컹덜컹 어디론가 실려가면서 언어의 도끼에 다쳐본 일이 있기 때문일까 어떤 둔탁한 날이 스쳐간 자국, 입술을 달싹이던 그 말들들 다시 읽을 수 없다
나희덕 시인 / 비에도 그림자가
소나기 한 차례 지나고 과일 파는 할머니가 비 맞으며 앉아 있던 자리 사과 궤짝으로 만든 의자 모양의 고슬고슬한 땅 한 조각 젖은 과일을 닦느라 수그린 할머니의 둥근 몸 아래 남몰래 숨어든 비의 그림자 자두 몇 알 사면서 훔쳐본 마른 하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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