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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인 / 어울린다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이런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들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너에게는 빈 새장이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계간 『문학동네』 2017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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