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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순 시인 / 괄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20.

강순 시인 / 괄호

 

 

  내가 우연히 괄호 속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의 손톱에 낀 때처럼 작아집니다

 

  당신은 내게 아무 말도 없이 괄호를 닫습니다

 

  괄호를 힘껏 밀어보지만

 

  괄호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괄호를 벗어나기란

 

  당신이 괄호를 채우는 일만큼 어렵습니다

 

  괄호는 당신이란 운명에 순종하지만

 

  나는 괄호 안에서 우연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어떤 공허를 계속 빛내며

 

  어느 날은 내가 누군지도 잊다가

 

  내 이름이 기억나면 외쳐봅니다

 

  나의 비명을 듣는 것은 오직 나뿐입니다

 

  당신은 마침표를 찍고 무심히 지나갑니다

 

  괄호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나는 잊혀져 잠겨 있습니다

 

  괄호 안이 답답합니다

 

  내가 발버둥 칠수록 기억들이 단단히 결속합니다

 

  나는 괄호를 다시 힘껏 밀어봅니다

 

  괄호가 쿵, 사라진다면

 

  나는 당신의 슬픔도 번쩍, 반짝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언제 버릴 수 있을까요?

 

  나의 운명은 모두 우연일까요?

 

계간 『문파』 2019년 가을호 발표

 

 


 

강순 시인

1998년 《현대문학》에 〈사춘기〉 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가 있음. 2019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