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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 / 하얀 새
1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만나는 일도 헤어지는 일
우리 서로 모르는 일
날아가는 새는 가는 곳을 말하지 않는다
2
올라가는 길엔 새의 울음 내려오는 길엔 잎사귀의 죽음
자꾸 집을 비우는 마음아
따라올 수도 없는 늦은 이별아
발은 날아가 버리고 빈 구두만 남아
슬픔은 끄트머리부터 말라갔다
3
날갯죽지 안에 남아있던 체온을 둥지에 놓고
새는 비로소 한 경계를 벗는다
우리가 그토록 머금었던 꿈도 부리가 찍은 흔적
떠나가는 꽃들은 무게를 다 버리고
젖은 날개를 털자 당신은 물기도 없이 흩어졌다
월간 『시인동네』 2019년 9월호 발표
이규리 시인 / 르네 마그리트의 연애
한낮의 연애는 캄캄했어요 왜 모든 연애는 숨는지요 비밀은 고단하였는데
생은 생이 아닌 힘으로 떠다니고 연애는 어떤 비참으로도 달라지지 않고
이유를 마련하곤 했지만 그것이 야유인 걸 모르지 않지요
환상을 덕지덕지 바르면 멀리 갈 수 있을까요
한낮의 연애는 발목을 벗어놓고 발을 더듬거나 눈동자를 찾아다니다가 눈을 빼버리곤 하지요
환한 해가 뜬 밤에 우리 남은 얼굴을 지워요
모든 연애는 비겁하였으니 모자를 열어 비둘기나 날려주면서
어느 낮은 갈등이 오고 어느 낮은 갈증이 와요
모포를 휘감고 대낮을 가는 미친 부끄러운 사랑아
부서져라 부서져라 간절한 문 앞에서
대낮이 흘리는 흰 피에서 후끈한 김이 올랐어요 자, 복면을 하고 우리 키스를 해요 이제 더 숨지 마요
격월간 『녹색평론』 2019년 3~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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